1920년께 미국에서는 냉장고 시장을 놓고 일대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기와 가스를 이용하는 냉장고가 개발돼 시장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능만 놓고 보자면 가스냉장고가 훨씬 우수했다. 암모니아의 기화열을 이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던 가스냉장고는 전동기가 필요하지 않아 소음이 없었고, 구조도 간단해 정비가 훨씬 쉬웠다. 무엇보다도 당시는 가스료가 전기료보다 훨씬 저렴했다.
이쯤 되면 승부는 뻔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1940년대를 기점으로 전기 냉장고가 기세를 날리는 반면에 가스 냉장고는 겨우 명맥을 이어갈 정도였고, 오늘날에는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유는 이랬다. 전기냉장고는 GE·GM 등 당대를 대표하는 기업이 주도하고 있었다. 표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전기냉장고가 현재의 표준과 유사한 지위로 시장을 먼저 선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서 표준이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통신업계에서도 미래 통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4G 표준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동 중에는 100Mbps, 정지해있을 때는 1 의 속도를 지원하는 4G 이동통신은 2010년쯤 표준화 작업을 거쳐 상용화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거론된 4G 기술의 후보는 세 가지다. 유럽 중심의 LTE(Long Term Evolution)와 인텔과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하는 모바일 와이맥스 에볼루션(Mobile WiMAX evolution), 퀄컴의 UMB(Ultra Mobile Broadband)다. 최근에는 이러한 3강 구도에서 UMB가 고립되며 점차 모바일 와이맥스와 LTE 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좁혀지는 듯하다. 연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08’와 최근 막을 내린 북미 이동통신전시회 ‘CTIA 2008’ 등 올해 열리는 전시 및 콘퍼런스 행사에서 모바일 와이맥스와 LTE 진영 간의 경쟁이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
HSDPA에서 진화한 기술인 LTE는 유럽, 미국 주요 사업자들의 든든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기술은 이동통신사들의 연합체인 GSM협회를 비롯, 보다폰·버라이즌 등이 지지를 선언하고 있어 그 위세가 막강해 보인다.
LTE의 강력한 경쟁자인 모바일 와이맥스 에볼루션은 포스데이타·삼성전자 등 국내기업을 비롯해 인텔 등이 주도하는 모바일 와이맥스 진영을 주축으로 노키아·모토로라·시스코 등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문가들의 견해는 모바일 와이맥스가 LTE보다 4G 표준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모바일 와이맥스는 직교 주파수분할 다중접속방식(OFDMA), 다중입출력(MIMO) 등의 기술을 웨이브2에 탑재하고 있어, 속도와 대역 폭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에 4G 기술로 진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LTE가 2010년께 상용화가 가능한 데 비해 모바일 와이맥스는 이미 상용화가 이뤄진 기술이라는 것도 매력적이다.
물론 4G 기술로 모바일 와이맥스나 LTE 중의 하나가 단독으로 채택돼 그렇지 못한 기술은 사라져버리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다. LTE는 이동통신 사업자에 맞게 만들어졌고, 모바일 와이맥스 또한 인터넷 사업자에 알맞게 개발이 된만큼 시장의 니즈는 충분히 있다. 그뿐만 아니라 4G 기술도 어느 한 진영이 아닌 두 가지 기술의 장점이 채택돼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우리 기업들이 모바일 와이맥스를 통해 잡은 호기를 잘 활용해 4세대 통신 시장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잡아나가야 할 것인지 미리 고민하고 공동 대응해야 한다. 9월이면 ITU-R 회의에서 4세대 이동통신 최소 요구조건이 정해진다. 4G의 기술표준을 선점하는 진영이 차세대 이통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만큼 우리 기업들과 정부, 관련학계의 선전을 기대하고 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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