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세계적인 라우터 생산업체인 C사가 제품 출하를 한 달 남겨 놓고 새 제품을 공개했다.
지난 5년간 2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개발한 차세대 네트워크 프로세서와 이를 탑재한 서비스 라우터였다. 제품 출하 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마케팅을 시작하던 관례를 깨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C사의 이번 발표 의미는 라우터 장비의 세대 교체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서비스 라우터는 기존 제품이 인터넷 트래픽의 최소 전달 단위인 패킷 단위로 목적지 주소를 해석해 경로에 맞게 전달해 주던 것과는 달리, 서비스 단위의 패킷 흐름, 즉 플로(flow) 단위로 이용자의 서비스 시작에서부터 종료 시점까지 상태 관리를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VoIP 서비스를 뛰어난 품질로 제공할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차세대 인터넷의 필수 기술로 인정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기존의 인터넷과 IPTV 및 VoIP 등의 고품질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통신사업자의 투자비와 운영 유지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네트워크 자원의 이용 효율을 최소 2∼3배 이상 획기적인 개선이 가능해져, 유선 IP 통신망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자원이 상대적으로 비싼 케이블TV망이나 와이브로/와이맥스, 2.5G/3G 등의 무선통신망의 투자비와 유지비를 최소화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을 보면 현재 ETRI는 플로를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성능면에서 C사의 네트워크 프로세서보다 뛰어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백본 에지급 라우터, 메트로 에지급 라우터 상용품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전자정부 통신망을 비롯해 국내외 9개 통신사업자 및 사설망에서 운용하고 있다.
또 현재 개발 중인 액세스 라우터가 올해 안으로 완료되면, 백본 코어급 라우터를 제외한 차세대 네트워크에 필요한 전 기종의 라우터군과 네트워크 전체를 통합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네트워크 제어 플랫폼 기술을 포함한 토털 솔루션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솔루션의 특징은 기존 네트워크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진화시킬 수 있게 해 통신사업자들의 투자 보호 측면에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차세대 네트워크 핵심 기술을 확보하게 된 것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서비스 수준이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3년 나라 전체를 패닉 상태로 몰고 갔던 ‘1·25 인터넷 대란’의 경험은 우리나라가 인터넷 기반의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 겪게 될 문제를 깊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가까운 미래에 또다시 다가올 수 있는 재앙에 대비하고자 인터넷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광대역통합망(BcN) 구축 사업을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BcN 구축사업이 종료되는 2010년이 되면 명실상부한 유무선 및 방송이 융합되는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기술과 솔루션들이 완성돼 통신 네트워크의 주력 시장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차세대 라우터 기술은 유선의 IP화, 이동통신의 IP화, 방송의 IP화, 콘텐츠의 IP화, 단말의 IP화로 진화되는 미래 융합 통신망 기술의 핵심 필수 기술이기에 과거 CDMA 신화 그 이상을 실현하는 잠재적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차세대 정보통신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 기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적절한 국가적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김봉태 ETRI 네트워크연구부장(bkim@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