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이건희 회장 퇴진을 비롯한 10가지 쇄신안을 내놨다.
이번 쇄신안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전략기획실 해체야 그렇다 쳐도 이 회장 퇴진이라는 카드까지 나올 줄 미처 예상치 못한 게 사실이다.
이 회장이 누구인가. 지난 1987년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대권을 물려받은 그는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만들어 놓은 인물이다. 이 회장이 취임하기 전 삼성은 국내 간판기업이었음에도 세계 시장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런 삼성이 현재는 반도체를 비롯해 휴대폰·모니터·TFT LCD 등 세계 1위 제품을 21개나 가지고 있다. 브랜드가치도 지난해 기준 169억달러로 세계 2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회장 취임 시 17조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150조원대로 늘었으며 세전 이익도 2000억원 대에서 14조2000억원으로 급격히 불었다.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8%에 이르고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할 만큼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신경영’을 비롯해 삼성이 고비 때마다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삼성을 이끌어 온 그는 지난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 사업에 착수, 한국이 전자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닦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2년과 2005년에는 삼성전자가 각각 시가 총액과 브랜드 가치에서 소니를 제치며 국민적 자부심을 한껏 드높여 주기도 했다. 삼성의 이 같은 성공과 발전에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그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떠안고 가겠다”는 반성과 함께 “국민들이 삼성을 아끼고 도와 주셔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키워 달라”라는 부탁을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마치 선장 잃은 항공모함을 보는 것 같아 불안한 감도 없지 않지만 총수 한 사람이 물러났다고 해서 흔들린다면 이미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답지 않다. 이번 쇄신으로 이 회장 퇴진과 함께 지난 수십년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온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는 등 삼성은 적지 않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를 얻는다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아울러 경제계 전반에 투명 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정착시키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삼성은 이번 쇄신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맞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날로 격해지고 있는 지금 삼성은 서둘러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반도체·휴대폰을 능가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등 부여된 과제가 만만치 않다. 반면에 외부의 도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본과 대만 미국 기업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반도체 LCD 분야에서 삼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총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부작용을 딛고 삼성이 하루빨리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를 온 국민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