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곳간 열쇠가 가정 경제권의 상징이었다. 대가족의 시어머니가 갖고 있던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물려줌으로써 며느리를 그 집안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안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듯 가정 경제권은 고부간에 대물림하던 여자들의 권리였다.
그러나 이제 가정의 경제권은 부부간의 문제가 돼버렸다. 더욱이 부부가 함께 사회생활을 하는 가정에서는 같이 버는 만큼 재산관리를 각자 한다거나 적어도 일방에게 가정의 경제권 전부를 맡길 수 없다는 부부간의 다툼도 볼 수 있다.
내가 결혼하기 전 아내를 처음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돼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아내의 가계부 쓰는 습관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출 내용을 꼼꼼히 적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이런 여자라면 살림을 아주 잘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내는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에 접어들었고, 집안의 돈관리는 내가 맡고 있었다. 사실 돈관리라 할 것도 없는 것이 내 통장에 급여가 들어오고 그 통장에서 돈이 지출되는 것만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생활 3년이 지난 올해 들어 회사에서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전부를 아내의 통장에 다시 보내주기 시작했다. 경제권을 내놓으라고 한번도 말해본 적이 없었지만, 공식적으로 우리집 경제권을 넘겨받고 난 후 아내의 얼굴이 달라졌다. 그동안 가정에서 역할이 단순 가사도우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아내에게 이제는 우리집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어엿한 안주인이 됐다는 뿌듯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돈관리를 하는지 살짝 물어보니 그 사이 적금통장도 몇 개 만들고 펀드도 가입해 놓았다고 했다. 수입과 지출이 뻔한 살림에 무슨 돈으로 저걸 다 만들었을지 신기하다. 역시 아내는 미다스의 손을 가졌던 것일까.
아내에게 경제권을 맡겨도 좋다는 이유는 첫째, 여자의 모성본능이다. 엄마는 본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가족을 위해 돈을 쓴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기회가 있어도 자녀 학비로 쓸 돈은 투자하지 않는다. 둘째, 도박이나 한탕주의 같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필요 없는 위험을 감수하다가 큰 대가를 치르는 법이 없다. 셋째, 냉정한 판단력이다. 재테크 학습효과를 위한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가난한 아빠를 부자로 만들어준 아내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곽상규 증권업협회 조사국제부 국제업무팀 대리 skwak@k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