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 위자드웍스 대표 pyo@wzd.com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웹2.0 엑스포’에 참석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작년과 너무나 달랐다. 그 활기차던 창업자들도, 열띤 토론의 장도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모인 인터넷 선구자들의 뜨거운 축제가 정말 차갑게 식었다. 처음 ‘웹2.0’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인물이자, 행사를 4년째 주최하고 있는 팀 오라일리는 기조연설에서 “여전히 웹2.0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지만 이미 많은 참가자는 ‘웹2.0’이 이제는 거품만 잔뜩 낀 싸구려 마케팅 용어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2005년, 팀 오라일리가 과거 10년간 성공한 웹서비스를 분석해 공통적인 성공 분모를 제시하며 ‘이것이 웹2.0’이라 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열광했다. 닷컴 버블 이후 계속 침체됐던 웹서비스 창업은 제2의 구글, 제2의 아마존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돈만 쌓아두고 있던 투자자들도 엄청난 물량을 웹2.0 사업을 하겠다는 벤처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다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하루에도 십여 개씩 신생 웹사이트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실상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필적하는 대성공을 거둔 서비스는 결국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닷컴 버블을 통해 한번 크게 덴 경험이 있는 투자자와 언론들은 이 때문에 금방 ‘거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작년까지만 해도 북적이던 웹2.0 엑스포가 불과 1년 만에 ‘차갑게 식어버린’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성공 모델의 부재. 이 모든 것이 불과 최근 2∼3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는 단지 멋진 말 한마디로 그들을 현혹시킬 수 없다. 업계가 아주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우리는 웹3.0 기업’이라고 보도자료를 냈다가 블로거들의 냉소를 받은 회사가 있었다. 해외에서도 벌써부터 무언가 좀 더 새로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웹3.0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웹2.0의 대표적인 개념으로 일컬어지는 참여·공유·개방·집단지성 등에다가 개인화와 인공지능(또는 시맨틱웹)을 추가하면 그것이 웹3.0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울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 웹서비스 업계는 웹2.0 이라는 용어를 최근 2∼3년 새에 너무나 잘 이용해 왔다. 침체된 업계 전체를 활황으로 만들기에 ‘2.0’이라는 분절된 용어 마케팅은 아주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체가 없음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지금이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는 실은 우리도 몰랐던, 또는 애써 피하려 했던-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해 ‘웹2.0’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접하고는 서점에서 ‘웹2.0 개발론’ ‘웹2.0, 새로운 세상’ 따위의 보나마나한 책을 고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지면을 빌려 솔직히 반성하고 싶다. 이제 와서야 깨달았는데 웹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웹일 뿐이었다고. 웹2.0도 3.0도, 또 최근 이야기 나오는 ‘소셜 웹’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결국은 그저 웹이 발전하는 과정의 일환일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웹2.0이란 없다. 그럴싸한 이론으로 무장해 웹3.0이라 포장하는 이가 있으면 그는 필시 가짜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웹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또한 내일도 있을 연장선상의 웹일 뿐이다. 변화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결코 분절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2.0’ 따위의 단어를 달고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싸늘해진 2008년 ‘웹2.0 엑스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