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로봇 R&D체계, 이제는 고쳐야

[ET단상]로봇 R&D체계, 이제는 고쳐야

 얼마 전 옛 산자부와 정통부의 로봇 과제 통합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총 88개에 달하는 두 부처의 로봇 과제 발표를 통해서 중복되는 과제는 상호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과거 경쟁 관계였던 두 부처 산하 로봇 연구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정보 교류를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워크숍에서 나온 합의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시행 과정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기존의 로봇연구 체계를 그대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과거의 로봇 연구과제를 모두 재평가하고 현시점에 적합한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하는데 이런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이명박정부가 끝날 때까지 참여정부 시절에 벌여놓은 로봇 R&D 체계의 문제점을 껴안고 가게 됐다.

 현시점에서 로봇 R&D 체계의 근본적 수술이 필요한 이유는 왜곡된 투자 구조 때문이다. 올해 지경부에서 집행할 800억원에 달하는 로봇 연구비용을 살펴보면 80%를 국가연구소와 몇몇 대학이 독식한다. 성장동력산업은 기업이 주체가 돼야지 연구소, 대학에서 육성할 수 없다. 로봇을 미래의 성장동력이라고 하면서 정작 기업은 R&D 체계의 전면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연구소, 대학 위주의 장기 목표에 약 80%를 투자하고 기업의 단기 목표에는 20%만 지원하는 것이 균형감 있는 정책일까.

 연구소와 학교는 5년 이후를 보고 핵심 기술을 준비하는 곳이다. 반면에 기업은 5년 이내 시장 창출을 목표로 상용화를 주도하는 곳이다. 연구소와 학교는 특허와 논문으로 평가받고 기업은 매출과 손익으로 평가받는다. 이명박정부의 철학에 따르면 기업이 고용을 주도해야 하는데 현재 연구비 많은 연구소가 고용을 주도하는 듯한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로봇 분야에 연구과제가 거의 없던 2000년대 초반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국가연구소, 대학들은 큰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로봇 R&D 예산을 기업과 연구소, 대학 측이 반씩 나누기만 해도 로봇 산업의 성장동력화는 매우 빨리 앞당겨질 것이다. 로봇 예산의 절반인 400억원이 민간기업에 가면 100개 로봇벤처에 연간 4억원씩은 지원할 수 있다. 이들 중 10%만 성공해도 한국의 차세대 로봇산업은 제대로 된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산업의 성공은 기업처럼 목숨 걸고 돈을 벌려고 할 때에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크숍에서는 로봇 R&D의 근본적 재편과 방향 조정이 아니라 두 부처에서 진행했던 로봇 과제를 당분간 지속하자는 식의 타협안만 나왔다. 연구소, 대학에 있는 로봇 연구자들이야 당연히 현재의 로봇 과제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길 원하게 마련이다. 이제는 참여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진행한 로봇 정책이 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혹자는 시장이 성숙되지 못했다거나 시장 창출이 어렵다, 또는 킬러앱을 찾지 못했다는 답변을 한다. 따라서 연구소 중심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놓는다. 이런 식으로는 이명박정부에서도 로봇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나는 연구소와 대학에 근무하는 로봇인들의 큰 마음과 결단을 기대해본다.

 로봇인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현시점에 맞는 밑그림을 그려서 빨리 좋은 변화를 시작할 것을 당부한다. 현재의 800억원에 걸맞은 미래의 산업화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로봇 R&D 체계가 새롭게 바뀌면 현재 진행되는 로봇 과제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가 나서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해줘야 로봇인들은 스스로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경직된 R&D 법규와 당장의 이권 때문에 로봇 R&D 체계의 혁신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한국 로봇산업은 세계 정상에 도전할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이제는 로봇인부터 바뀌어야 한다.

김진오 (광운대 정보제어공학과 교수, 로봇산업정책포럼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