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IT’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뉴스다. 직전 두 대통령과 비교하지 않아도 IT와 영 거리가 있던 대통령이 아닌가. IT는 대선 이후 공문서에서 갑자기 사라진 용어다.
혹시 ‘대운하’ 이미지를 벗기 위한 제스처일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그래서 만났을까. ‘의심’이란 기자의 못된 버릇이 나오긴 하지만 이런 이유만은 아닌 듯하다.
IT는 기본적으로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여러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당연히 일자리는 줄어든다. IT제조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느 산업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 IT제조업체들은 원가를 맞추려고 중국과 같이 인건비가 싼 곳을 찾는다. 공장을 해외로 옮기니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외환 위기를 극복한 IT의 공(功)도 어느덧 과거 일이 됐다. 최근 몇 년 새 IT라는 성장엔진이 멈췄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IT전략 앞에 ‘새로운’(new)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과 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존 IT전략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뉴 IT’의 핵심은 기존산업과 IT산업의 융합이다. 좋은 IT인프라와 IT 제조기술을 자동차·의료·건설 등의 산업과 접목시켜 경쟁력을 높이고, 신규시장을 창출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늘 제자리인 전통산업과 성장이 둔화한 IT산업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이른바 ‘윈윈’ 전략이다.
이 전략이 IT산업계 ‘전용’이 아니라며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IT산업만을 위한 ‘IT-839’만 해도 그림과 달리 신규 시장 창출이나 글로벌 경쟁력 제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뉴 IT전략’이 되레 IT산업의 활성화와 체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식경제부는 뉴 IT 전략을 세웠으며 대통령도 공개석상에서 ‘재가’했다. 솔직히 말해 ‘IT-839’보다 더 기대를 걸 만한 정책이라고 본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IT 대기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책임지면서도 정부 정책에서는 늘 소외돼 왔던 IT 중소벤처인의 깊은 좌절감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의 잃어버린 꿈이다. 성공 신화를 꿈꾸며 밤샘 일을 마다하지 않던 창업자와 엔지니어들이 어느 순간 희망을 잃기 시작했다. 진입장벽이 낮은 IT산업의 속성상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 때문만은 아니다. 대기업 중심의 IT산업 질서 속에 잘 해봤자 근근이 먹고살거나 하도급업체로 전락하는데 도대체 무슨 의욕이 생기겠는가. 곁에 성공모델이라도 있으면 꿈을 잃지 않으려 하겠지만 안철수 의장의 말대로 5년 전만 해도 있던 ‘떠오르는 벤처’마저 사라졌다. 선배들이 이러니 예비 창업자인 이공계 학생들이 고시촌이나 의대, MBA를 기웃거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세계적인 힙합 뮤지션의 꿈을 이룬 윌아이엠이 방한해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게토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그 속에서 난 상상력과 꿈을 키워갔습니다. 상상력은 내게 치료제이자 미래인 셈이죠.” 그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뮤지션으로서의 시작도 없었다. 엔터테인먼트산업과 마찬가지로 IT산업 역시 원동력은 꿈이다.
대통령의 언급으로 지경부의 뉴IT전략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종전과 다른 IT중소벤처 지원 정책도 덩달아 내놓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정책의 시작만큼은 중소벤처인이 ‘잃어버린 꿈’부터 되찾게 해주는 일이어야 한다.
신화수 부국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