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인터넷 개방준비는 2002년 4월 시작됐다. 조선노동당 교육과학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광명’을 통한 인터넷 서비스 실시를 건의하면서부터다. ‘광명’은 북의 컴퓨터 통신망 이름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대단히 흥미 있는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몇 년간 잘 준비해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른바 ‘신중한 단번도약’의 지시다. 이에 따라 2005년 리눅스 운용체계(OS) 소스 분석을 끝낸 뒤 터미널과 OS 연구 개발을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윈도나 유닉스 시스템은 해당 OS의 소스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아 보안상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으며, 통합 보안·방화벽 기능을 수행하는 프로그램 ‘능라-88’을 개발해 ‘광명’에서 시험했다.
지난해에는 국제인터넷주소 관리기구(ICANN)로부터 국가도메인(.kp)을 추인받고, 조선콤퓨터센터(KCC)를 인터넷 주소 관리기관으로 지정하면서 국제인터넷배정기구(IANA)에 국가도메인 리스트 등록도 마쳤다. 북의 인터넷 개방 준비는 이처럼 기술·절차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었지만 재정·정책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엄청난 수요의 서버와 터미널 네임서버 그리고 라우터 등 중계 장비는 전략물자 반입금지 품목이어서 북한에 들어가기 힘들다. 불안정한 전력공급도 북의 원활한 인터넷 사용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다. 일부 전문가들은 체제 붕괴 우려 때문에 인터넷 국제 개방을 꺼린다는 생뚱맞은 추단을 하고 있지만, 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지원 대책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막상 남북 결합이 이루어졌을 때 남북의 정보통신(ICT) 격차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권에서는 ‘햇볕’이다, ‘퍼주기’다 하고 서로 다투면서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대처하다 이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반도 북부의 정보화는 북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북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민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때다. 대체로 인구의 10%에 PC를 공급하면 정보화 의식이 수직으로 상승하며 탄력이 붙어 자력갱생이 가능한 수준이 된다. 지금 북녘 아이들은 종이에 그린 자판으로 연습한다는 씁쓸한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북의 정보화에 필요한 PC 250만대는 2조5000억원이 소요되는 꿈 같은 목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구상하는 비핵개방 3000 프로젝트의 최우선 과제로 북한지역 ICT 지원에 40억달러(약 4조원)를 배정해야 한다. 다음달에는 식별자(로케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 해외동포 학자들이 중국에서 모인다. 식별자는 인터넷 입력과 부호 변환에 대한 112가지의 지표로 이루졌는데 이참에 우리는 3벌식 정음 아스키부호, 3벌식 쪽글판, 다국어 입력 리눅스 OS, 정음 기반 다국어 글편기, 공개문서 파일 형식(odf) 같은 것을 한 민족이 서로 공유하길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합의된 사항을 관련기관이 국제표준으로 제정하면 좋을 것이다. 남녘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이 실장 된 최첨단 간이형 PC가 비싸지 않으므로 2대를 구입해 자기가 한 대 쓰고 다른 한 대는 동포들에게 나누어 주는 아량도 필요하다 이른바 ‘나란히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북녘뿐 아니라 최근 급격히 와해돼 가는 중국 동포와 미주 동포사회 등 한민족 ICT를 위한 인터넷 징검다리도 놓아야 한다. 이는 남북과 해외동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민족적 과제다. 진용옥/경희대학교 전자정보대학 교수 suraeb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