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신용사회의 양면성

[ET단상]신용사회의 양면성

 산업혁명 이후 모든 기술 발전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 몸의 신경계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결합으로 돼 있고, 자동차가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의 결합으로 돼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어느 한 쪽의 장점은 다른 쪽의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신문 지상에서 약국 전산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부인에게서 얻은 약사의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개인 정보 72만건을 빼돌려 채권추심회사 직원에 넘긴 혐의로 불구속 입건 조치된 부부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게다가 채권추심을 위한 불법 개인 정보 유출에 전·현직 검찰 수사관들뿐만 아니라 동사무소 직원까지 연루된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기사를 접하면서 정보통신기술(IT)의 양면성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의 빠른 확산과 정보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개인 정보를 대량으로 쉽게 축적할 수 있게 했다. 반대로 제3자나 내부자에 의한 정보 유출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개인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기업과 공공기관들의 개인 정보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IT의 양면성과 함께 우리나라 채권추심 및 채권추심회사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떠올리는 것은 애 직업상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의 채권추심산업은 1997년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채권추심회사 설립 요건이 완화되면서 본격화됐다. 은행 및 대기업은 채권추심 자회사를 경쟁적으로 설립해 현재는 20여곳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기업 내의 채권추심 담당부서가 분사하거나, 모회사의 부실채권 추심업무를 대행 관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신용정보회사의 입장에서 채권추심은 신용 조사, 신용 조회에 부수된 업무가 아닌 독립 업무이면서, 지금까지 매출액의 60%를 차지하는 캐시카우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실 채권의 감소, 신용 연체자에 대한 정부의 각종 신용회복 지원 대책, 업체 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수료 인하 등으로 채권추심 업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직원의 상당수는 채권회수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는 계약직 형태로 운용되고 있고, 회수 실적을 올려야 하는 추심 직원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상에서 채무자와 숨 막히는 숨바꼭질을 하기 일쑤다. 채권추심업은 부실 채권을 전문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금융기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해 신용 질서의 확립에 기여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용보증기금(코딧)에서 부실 채권 회수가 갖는 의미는 일반 금융기관이 갖는 의미 이상이다. 코딧은 중소기업의 신용을 평가하여 원활하게 자금이 융통될 수 있도록 신용보증을 하는 공적기관이다. 부실 채권 회수금액은 그만큼의 국민 부담을 줄이고, 코딧의 신용보증 재원으로 축적돼 중소기업의 자금 지원에 다시 사용되게 된다. 따라서 적어도 코딧과 같은 공적기관에 한해서는 원활한 채권 회수를 위해 국가·지방자치단체·국민연금관리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제공과 관련해 문제되는 것이 바로 개인정보 보호의 요구다. 하지만, 개인의 신용정보 보호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신용정보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 국민경제와 관련시켜 생각할 문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개인의 신용정보 보호도 신용사회의 구현이라는 공익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범위에서 제한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신용사회의 양면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신용이 바로 돈인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신용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신용조사, 신용평가의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채권 회수의 단계에서도 최소한의 신용정보가 제공돼야 할 것이다. 신용 질서의 파탄으로 인한 불이익은 신용연체자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오현 신용보증기금 이사 kweon@kod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