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삼성전자가 예상을 뛰어넘는 큰 폭의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의 골자는 한마디로 이건희 회장에 이어 윤종용 총괄 부회장까지 물러나 사실상 ‘세대 교체’를 위해 포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윤 부회장은 지난 97년부터 삼성전자 총괄 대표로 재임하면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지만 ‘구시대 인물’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윤 부회장이 결국 ‘용퇴’를 결정하면서 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는 경영 쇄신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새롭게 총괄 대표로 선임된 이윤우 부회장은 지난 68년 12월 그룹 공채로 삼성전관에 입사한 뒤 77년 6월부터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면서 반도체사업 성공 신화를 일궈온 삼성이 낳은 대표 경영자. 특히 반도체와 대외협력 부문에서 큰 성과를 보이고 큰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원만한 리더십을 갖춰 ‘새로운 삼성전자’에 부합하는 적임자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부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반도체 기술개발 전략을 관장해 삼성전자 경영력 기반을 확실히 다졌고 대외협력 부회장으로서도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주요 글로벌 거래처 및 업계 주요 CEO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글로벌 동향에 밝아 신사업 추진, 제휴 등에서 돋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윤우 체제에 맞춰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도 이 부회장을 보좌할 수 있도록 최적의 조합이 이뤄졌다. 윤 부회장 일선 후퇴에 따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도체총괄을 제외한 3개 총괄 사업부장은 모두 유임됐다. 삼성을 세계 D램 업계 1위로 키운 데 이어 플래시메모리도 1위에 올려놓는 등 이론과 실무에 두루 밝은 황창규 사장만 기술총괄(CTO) 사장으로 이동했다. 대신에 시스템LSI 사업부 수장인 권오현 사장을 반도체총괄 사장으로 기용해 메모리와 비메모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종합기술원장과 신사업팀장을 함께 맡아온 임형규 사장을 신사업팀장으로 선임해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앞으로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황 사장은 4개 총괄 사업부 수장 중 유일하게 기술총괄로 보직이 변경됐다. 황 사장이 기술총괄로 이동한 데는 숱한 악재 때문이지만 새로운 도약의 기회도 함께 주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황 사장은 지난 1분기 세계 메모리 기업 중 유일하게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했지만, D램이 적자에 빠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실적뿐 아니라 주변 상황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역대 초유의 정전 사태로 기흥사업장 낸드플래시 등 주요 라인이 1시간 이상 멈춰서는 등 제품 양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에 삼성전자 측은 “황 사장은 직급이 그대로지만 직책은 사실상 부회장급으로 봐야 한다”며 여운을 남겼다.
기술총괄이었던 이기태 부회장은 대외협력담당을 새로 맡게 됐다. 이윤우 부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삼성전자 내 ‘2인자’로 다시 입지를 회복하면서 이윤우 부회장과 함께 새로운 삼성을 위한 양대 축으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