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옴에 따라 올림픽 열풍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중국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금년에는 성화 봉송 루트마다 티베트 뉴스가 부각돼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올림픽을 국가 이미지를 격상시키는 기회로 삼는 것은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40년 전 일본이 그랬고, 우리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격을 높이고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플레이어로 등극했다. 이처럼 한·중·일의 역사 윤회를 보면서 언뜻 생각이 미치는 것이 있다.
올해 우리 정부가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예산이 10조원(100억달러)을 상회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R&D에 100억달러를 투자한 해가 1987년인데, 이때 일본의 국민소득은 1만9963달러였다. 공교롭게도 올해 우리의 국민소득을 2만493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두 나라 정부가 R&D에 100억달러를 투입한 해에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도달했다. 이런 사실은 주요 OECD 국가에서도 발견된다. 독일은 1987년에, 프랑스는 1991년에 그리고 영국은 1999년이었다. 우리의 R&D 투입 규모도 이제 OECD라는 메이저리그에 버금가게 된 것이다.
우리의 국가 R&D 정책과 제도는 1982년에 시작한 과학기술처의 특정R&D사업에 근간을 두고 점진적인 확대와 개선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 15년 동안 빠르게 성장시켜서 과학기술 역량에서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부상했다. R&D 활동 지표를 보면 논문 발간 12위, 국제 특허 출원 5위 그리고 철강, 조선,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에서 선두 대열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R&D 투입에 대한 생산성이 미흡하고 양적 성장에 비해서 질적 수준이 낮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 투자를 주로 단기적인 경제적 효과에 중점을 둔 것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과학기술인도 공감하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의 원인은 주로 과학기술의 수요와 공급 격차가 크고, 연구사업의 종류가 다양하며, 관리 체계와 규정이 복잡하고 각종 평가의 신뢰성이 낮고 정부 개입이 과도하다는 것들이다.
최근 이명박정부는 국가 R&D 시스템을 새로운 관점에서 점검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시의적절한 조처다. 새 정부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으로 경제 성장에 다시 불을 지핀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기초과학과 에너지·환경 등 중장기 R&D 사업을 대폭 지원하는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R&D 활동이 새로운 성장동력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책과 제도에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의 R&D 정책을 자원 투입 규모에 맞도록 그리고 효율성과 효과성이 상승하도록 대폭 바꾸어야 한다. 정부의 R&D 예산이 100억달러를 상회해 선진국과 비교적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나름대로 연구 경험과 시스템 운용 경험도 축적했다. 우리가 선택한 분야에 임계 규모 이상의 재원 투입도 가능하다.
효율적인 모델을 수립하기 위해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길을 걸어간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여러 지표에서 우리의 3∼4배 규모인 독일의 과학기술 정책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동안 독일 정부도 공공연구의 효율적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독일의 제도를 살펴보면 몇 가지 핵심적 특징이 보인다. 국가 R&D 지원 방식이 신규성과 수월성에 중점을 두며, 자원 배분을 민간 전문가 그룹에게 맡기고, 동료평가 시스템에 신뢰가 높다.
독일의 시스템이 모두 앞서 있다 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당면한 고민에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양적인 팽창을 거듭해 온 우리 R&D 정책과 활동 전 과정에서 정교하게 개선시켜서 질적 도약이 가능한 글로벌 표준을 따를 때가 됐다.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dwkum@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