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란 말이 있다. 지난 가을 수확한 식량이 바닥나고 새롭게 보리를 수확하기 직전인 5∼6월의 춘궁기를 말한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춘궁기를 겪었다. 요즘 신세대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먼 단어기도 하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이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그것도 매우 심각하다. 사실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이 식량난으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이때의 식량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이 기간 동안 북한은 150만∼230만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나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로 유추한 수기 때문에 터무니 없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이 시기를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를 정도다.
이후 북한의 식량 사정은 최악의 상태를 극복했지만 아직도 해마다 일정 규모의 식량이 부족해 국제 원조를 받고 있다. 국제 기구 등의 추정에 의하면 북한은 매년 600만∼650만톤의 식량이 필요하고 최소한 550만톤은 확보해야 하지만, 올해는 400만톤 안팎의 수확이 이뤄져 100만∼150만톤 규모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추정된다. 올해 특히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정부의 식량 지원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까지 북한에 인도적 차원에서 차관형식을 빌려 매년 40만톤 규모의 식량을 제공했다.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있을 때에도 식량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다른 조건 없이 지원해 왔다. 그러나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남북이 새로운 기 싸움에 들어가면서 북한의 식량지원 문제가 아직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야 정부가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에 적극 나설 의사가 있다고 밝히고, 미국과 식량지원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왕 식량을 지원할 거라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지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식량난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어린이다. 90년 초 고난의 행군시기에 10세 이하 아동 사망률이 40%까지 육박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만큼 기아에 취약하다. 우리 정서도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모두가 자기 자식처럼 아파하고 분노한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초등학생 납치 살인 사건을 보면서 모두가 내 자식인 양 슬퍼하고 아파했다. 우리 부모들 심정은 다 같은 것이다. 우리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건강하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두 같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북한 아이들의 발육상태가 우리 아이들에 비해서 2∼3년 늦어 보인다는 것이다. 5세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에게 나이를 물었더니 8살이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라서 북한의 식량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는 어떤 기업인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평양이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어떠할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식량문제는 이념이나 정치적 대결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인도적 지원은 그 자체로가 의미 있고 필요한 것이다. 정부도 이런 부분에 좀 더 유연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왕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들이 필요한 시기에 제공될 수 있도록 시기를 놓치지 않고 보내주는 것도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아량이 아닐까 한다.
유완영/유니코텍코리아 회장 jamesu6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