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소프트웨어(SW)의 발주 관행 문제로 우리나라 IT산업에 먹구름이 일고 있다고 한다. SW 사업대가 기준은 기능 점수의 업무량 중심으로 돼 있으나 대부분의 계약에서는 투입 인력으로 관리한다. 원도급도 발주자와 업무량에 의한 계약을 하지만 하도급은 대부분 헤드 카운팅 계약을 해 인건비만 지급한다.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 종료가 어려우며 종료 후에도 운영 지원이나 시스템 안정화 등의 명목으로 개발자에게 수정과 보완의 부담을 전가한다. SW 사업자 수는 2006년 기준으로 8000여개(실제로는 3000개 미만) 업체에 50만명 이상이며 시장 규모는 17조4000억원이다. 특히 주당 60∼70시간을 넘는 노동시간에 1000만∼3000만원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환경에서 우수인재가 줄줄이 빠져 나가고 있다. 이것이 IT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SW 사업의 현주소다.
SW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우리가 매일 한시도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휴대폰에 사용하는 SW는 1990년에는 30만스텝 정도였으나 2000년에는 500만∼600만스텝, 2008년에는 1000만스텝이 넘어갈 것이라고 한다. 1960년도에 개발된 F-4 전투기 조작에서는 8% 정도만 SW가 관계하고 있었지만 2000년에 개발된 F-22 전투기는 80%가 SW 없이는 조작할 수 없게 돼 있다. 2003년 3월 일본 공항의 체크인 시스템 다운으로 연휴 첫날 수만명이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인텔의 제조라인 프로세스에서 단 3행의 미스에 의한 리콜로 4억달러의 손실이 났다. 알고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얘기다. 우리는 SW의 불량으로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책임질 사람 아무도 없다. 이것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SW 사업대가 기준의 현실화, 입찰·낙찰제도 개선, 가격보다 기술을 중시한 협상에 의한 계약, 덤핑 방지를 위한 기술점수 계산 방식의 개선, 제안서 보상제도 도입, 분리·분할 발주, 요구 정의의 명확화, 발주관리 능력 향상 등의 노력들을 꾸준히 해 왔지만 실제로 업체의 의견을 들어보면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한다. 가격 문제와 과업 범위에 대한 트러블로 요약되는 이러한 문제들은 10∼20년 전과 유사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책임을 부여할 전문가 양성과 제도 도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리멍텅한 발주자와 사업 범위가 애매한 상태에서 덤핑으로 낙찰을 따낸 다음 하도급이나 인력 지원 형태의 저임금 업체에 넘겨 버리는 관행으로는 SW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이 설계와 개발을 분리하지 않으면 사실상 견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건축업계에서와 같이 시스템 설계와 시행(개발)을 분리해서 국가기술 자격을 가진 전문가에게 설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면 된다. 설계대로 개발했을 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문제가 생기면 이 전문가에게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하면 개발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오프쇼어 개발은 피해갈 수가 없다. 설계와 개발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종래의 방식으로는 오프쇼어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계 비용은 시스템 개발비 총액의 5∼10%가 적당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SW 산업을 살릴 수 있으며 우수한 인재가 몰리게 되면 IT강국으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10% 예산절감 방침에 떨 필요가 없다. 비용은 반으로 효과는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심기보(정보통신기술사협회 회장) shimkb@khn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