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원천 연구 투자는 사업자 기여금에서

[월요논단]원천 연구 투자는 사업자 기여금에서

오늘 우리가 향유하는 갖가지 형태의 정보통신 및 방송 서비스는 과거 수많은 연구자가 수행했던 원천 연구 덕분에 피어난 꽃이다. 벨의 전화기, 마르코니의 무선전신 발명에서부터 맥스웰의 전자파 이론, 섀넌의 정보 이론 정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무형 원천 연구가 밑거름이 됐다. 1984년 해체되기 전까지 AT&T는 독점적 통신사업에서 얻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벨연구소에 투입했다. 벨연구소는 안정적 재정지원 아래 통신은 물론이고 수학·물리·재료 등 광범위한 원천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 결실로 트랜지스터·레이저 등 오늘의 정보통신 문명을 뒷받침하는 커다란 발명품이 탄생했다. 4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에 이르면 인류가 발명해놓은 연구 결과를 모두 소진하게 된다. OFDMA(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 Access), MIMO(Multi Input Multi Output) 등 이론적으로 존재하던 기술까지 총동원된다. 세계 석학들은 이것을 두고 AT&T 해체 이후 정보통신 원천 연구가 소멸됐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풀이한다. 이제껏 선진국의 원천 연구 결과를 이용해 ‘IT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로서는 이제 원천 연구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때가 됐다. 통신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기업 간 경쟁이 촉진되고 제품 및 서비스 가격이 하락, 사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반면에 경쟁은 단기성 수익에 몰입하게 하고 장기성 투자를 배척하게 만든다. 응용 연구에 투자해 단기성 승부에 치중할 뿐, 원천 연구는 백안시하게 된다. 어떻게 경쟁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원천 연구를 병행할 수 있을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보통신 및 방송의 생태계에서 사업자는 제조업체에서 기기를 사고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판다. 제조업체는 기기를 만들어 사업자와 이용자에게 팔고 연구자에게 기술을 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단기성 순환 구조에 그친다. 제조업체가 연구자에게 ‘주문’하는 것은 단기성 응용 연구고, 연구자가 ‘납품’하는 기술도 현안문제 해결책에 불과하다. 여기에 장기성 원천 연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순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 생태계를 장기성 순환구조로 개편하려면 AT&T와 벨연구소의 예에서 교훈을 취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인 AT&T는 사용자에게서 얻은 서비스 제공 이익을 벨연구소의 원천 연구를 위해 장기 투자했던 것이다. 이처럼 원천 연구의 궁극적인 수혜자가 되는 사업자들이 원천 연구에 기여하도록 생태계 순환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통신사업자들이 원천 연구에 아무런 투자 없이 그 열매만 따먹는다고 그 ‘무임승차(free riding)’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통신사업자들이 이미 주파수 할당대가·전파 사용료·정보통신진흥기금을 내고 있고, 방송사업자들도 방송발전기금을 납부하고 있다. 요는 이러한 재원들을 방통 융합의 정신에 맞춰 재조정하고, 원천 연구에 집중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과 방송 분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여타 산업분야의 발전을 견인하고 세계를 선도하려면 원천 연구가 밑바탕에 자리 잡아야 한다. 원천 연구를 통해 무선 주파수 자원과 유선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개척하고, 새로운 기술·서비스·콘텐츠를 발전시켜 IT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도록 해야만 그 힘이 모든 산업에 전달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방송 통신 사업자의 기여금을 원천 연구에 투입하도록 장기성 순환 구조를 수립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b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