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과도한 마케팅 지출은 자제하겠다”.
“경쟁사의 고객을 빼오기 보다는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데 주력하겠다”.
이 말은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이 三口同聲으로 외쳐온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구두선에 불과했다. 이통사들은 시장 파이를 키우기 보다는 경쟁사의 고객을 빼앗는데 주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말로만 시장 질서를 외치고 실제로는 경쟁사 고객 뺏기에 불과한 소모적 땅따먹기 싸움을 매달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가 집계한 올 상반기(1월~5월 26일) 이동통신 번호이동 가입자 통계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이동통신 시장에서 번호이동을 한 고객은 총 3백20만여명.
이는 같은 기간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통3사가 확보했다고 발표한 신규가입자 729만여명의 44%에 해당하며, 전체 이통시장 증가 규모인 100만여명보다 3배가량 많은 수치다.
이기간 동안 SK텔레콤은 총 118만여명의 경쟁사 고객을 자사 고객으로 유치했다. 특히 SK텔레콤은 KTF로부터 98만여명을 빼오고 LG텔레콤으로부터 20만여명을 가져왔다.
KTF는 같은 기간 동안 135만여명의 타사 고객을 유치하느라 힘을 썼다. 이중 SK텔레콤으로부터 96만여명을, LG텔레콤으로부터는 39만여명을 자사 고객으로 각각 유치했다.
LG텔레콤은 같은 기간 동안 SK텔레콤에서 20만여명의 고객을 빼왔으며 KTF 고객 46만여명을 자사 고객을 돌려놓는데 성공했다.
즉 SK텔레콤은 KTF의 싸움에서 98만여명의 고객을 유치한 반면 96만여명을 잃어버렸다. 결국 2만명 정도의 고객을 뺏어오는 전과를 올린 셈이다.
LG텔레콤과의 싸움에서는 20만여명을 유치하고 도로 20만여명을 내주었다. 제로섬 싸움을 한 셈이다.
KTF는 LG텔레콤과의 전쟁에서 39만여명을 빼앗아 오는데 성공했지만 반대로 46만여명이라는 귀중한 고객을 잃어버렸다. 참담한 전과다.
올해 1분기 동안 이동통신 3사가 마케팅 전쟁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1조5000억원 정도다.이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얻은 전과 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성적이다.
물론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돼 어쩔 수 없이 경쟁사의 고객을 빼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실제 새내기 가입자 보다 번호이동 가입자가 3배 이상 많다는 점은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경쟁이 도를 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주목해야 될 점은 보조금 규제 폐지이후 시장 안정을 내세우면서 이통3사들이 의무약정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매우 미약하다는 점이다.
이번 달 현황만 보더라도 아직 한달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86만명이 타사업자로 이동, 이미 지난달 번호이동 수치(82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이 수치는 올해 1월(52만명)과 2월(66만명)의 수치를 훨씬 앞서는 규모로,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올 한해도 지난해와 같은 기록적인 번호이동 혈전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 분위기 만으로 보았을 땐 ‘이통시장 안정’은 이미 해를 넘기고 있는 셈이다.
이통사들은 습관적으로 “마케팅 경쟁을 자제하고 서비스와 요금 경쟁으로 시장 혼탁을 더 이상 야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가입자를 뺏어오기 위한 경쟁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