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계획서 쓰는 것보다 사업 실행이 우선돼야

[칼럼] 계획서 쓰는 것보다 사업 실행이 우선돼야

 나의 직책은 프로덕트 매니저다. 특정 제품을 책임지고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제품과 그 특성을 정의하는 데에서부터 출시 계획, 문서 관리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관여한다.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 많은 전문 서적을 읽고 직장 동료들과 종종 토론도 벌인다. 나는 또 직접 창업하고 실패도 맛본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얻은 뼈저린 교훈 중 하나는 ‘사업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먼저 실행에 옮기자’다. 제프리 무어,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등 유명한 마케팅 서적 저자들도 사실 성공한 기업가는 아니다.

 반면에 실리콘밸리에는 ‘우연히(?)’ 성공한 회사들이 무수히 많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개발한 시제품을 바탕으로 기술을 팔려 했으나 야후를 포함, 누구도 그 기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들 이미 검색시장은 포화된 상태고 신생기업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 그들의 얘기를 전해 들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업자 앤디 베흐톨셤이 식사 자리에서 10만달러짜리 개인 수표를 내놓자 비로소 그들은 창업을 결심한다. 그 수표를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자 수를 가지고 있는 웹사이트 중의 하나인 크레이그스리스트를 만든 크레이그 뉴먼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에 수많은 메일링 리스트를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는 판단에 좀 더 쉬운 방법으로 메일링 리스트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시작한 웹사이트가 바로 크레이그스리스트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 역시 대학 1학년 때 같이 입학한 동기들의 이름과 얼굴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됐다. e베이나 페이팔 등과 같은 회사들에서도 비슷한 창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필요성을 해소시켜주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창업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마케팅 서적에 나와 있는 전략이나 전술을 따라 거창하게 시작했던 것이 아니다. 엄청난 성공을 성취한 후에 특정 시점의 특정 행동들이 왜 탁월했는지를 조명하는 것은 쉽지만, 그 당시에 있었던 행동이 실제로 전혀 다른 동기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는지는 사실상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마케팅 전략에 관한 서적들이 갖고 있는 약점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은 마케터가 아니라 기술자가 창업했다. 휴렛패커드·시스코시스템스·선마이크로시스템스·야후 그리고 구글 등은 모두 특출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기술자가 처음으로 깃발을 꽂았다. 마케팅과 판매는 일단 창업을 하고 어느 정도 성공한 이후에 이뤄져도 괜찮다. 게라지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가이 가와사키는 기업가가 범하기 쉬운 실수 한 가지가 바로 사업계획서를 먼저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서비스나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즉, 버전 0.1을 가능하면 빨리 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그 서비스나 상품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할 것이고, 그에 관한 피드백을 줄 것이고, 또 그로 인해 성공의 길로 다가갈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들이 늘 말하듯 비타민이 아닌 꼭 필요한 진통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 뒤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서비스나 제품을 개선함으로써 기업가는 사업을 성장시켜 나갈 수 있다. 또 성장을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면, 실제로 증명된 사업 모델이 있으므로 자금 모집도 휠씬 수월하게 된다.

 기업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께 감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마케팅 책을 덮고 사업계획서 작성은 멈추시고, 먼저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다.

 정양섭 yangtheman@gmail.com

 ※필자는 현재 기가핀 네트웍스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 K그룹 운영진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