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수율은 세계 4위로 최고 수준인 우리 대학의 사회 부합도가 55개국 중 53위라고 한다. 경영인을 대상으로 대학 졸업생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가 그렇다. 모든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학을 향해 극단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대학이 ‘쓸모 없는 꼴찌’라는 것이다.
대학과 기업은 그야말로 불가분의 관계다. 대학은 졸업생을 기업으로 보내야 하고, 기업은 대학 졸업생을 활용해야만 하는 처지다. 속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대학이 생산자라면, 기업은 소비자다. 물론 기업이 대학의 유일한 소비자는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주어야 하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실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기업인만이 아니다.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도 불만이다. 입시·교육·연구·행정·재정의 모든 면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이 상태로는 절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대학은 근본부터 완전히 달라져야만 한다. 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정말 심각하고 근원적인 문제다. 우리가 원하는 대학이 어떤 것인지가 도대체 분명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 대학을 말한다. 언론에 소개되는 외국의 평가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대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대학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고, 과연 그런 대학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도 그런 평가의 기준을 근거로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다. 대학의 규모와 투자를 확대하고, ‘스타’ 교수, 외국인 교수와 외국 학생을 영입하고, 영어로 강의를 하고, 논문을 많이 발표하게 만들 수는 있다. 기업을 만족시키는 일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외국 사정과 언론의 속성을 잘 아는 외국인 총장을 데려오는 것도 평가를 잘 받는 방법이 된다.
여기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외국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만 하면 우리 대학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런 대학이 몇 개나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런 대학이 생기기만 하면 다른 대학들도 분명히 달라지게 될까. 그런 변화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일까.
정말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세계적 대학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지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기업의 요구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을 이른바 ‘맞춤형’으로 길러낼 수는 없다. 그런 교육은 이미 망해버린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했다. 무늬만 세계화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외국인 교수가 우리 대학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가 없다. 진짜 유능한 인재를 돈으로 사올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지극히 비교육적이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무작정 불평만 할 일이 아니다.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창조성’과 ‘세계화’만을 강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기업의 인재선발 방식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 창조적 인재를 선발한다면서 노래방에서 장기자랑을 시키는 것이 우리 기업이다. 대학생들이 전공은 외면하고 토플 학원이나 어학 연수에 집착하는 것도 기업의 불합리한 선발 방식 때문이다.
대학에 대한 기업의 투자도 획기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의 성장은 대학에서 양성해준 인재들이 이룩한 것이다. 기업이 자신들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대학에 무엇을 해주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IMD 평가에서 우리 대학을 ‘쓸모 없는 꼴찌’로 평가절하해 버린 것은 우리 기업의 경영인이었다. 제값을 치를 생각은 하지 않고, 상품이 나쁘다고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