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내리고도 욕먹는 방통위

 이명박정부의 신뢰 상실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 국민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는지 내놓는 것마다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 개중에는 제대로 된 철학이 담긴 정책도 있건만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비판 일색이다. 11일 발표한 이동통신 요금 인하방안이 대표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나라당이 야심차게 선보인 ‘작품(?)’임에도 누리꾼의 뭇매를 맞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에 달린 댓글의 90%가 비난성 내용이다. “저소득층 지원하려면 똑바로 해라, 휴대폰 요금 내린다고 도움이 되냐, 선심행정”이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이정부의 수혜계층은 상위 1% 부자 아니면 최저소득층이다, 중산층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양극화 앞당길 뿐”이라는 비수 같은 지적도 눈길을 끈다. “기초생활자 휴대폰 비용까지 지원하는 것은 모럴 해저드”고 “기본료 그대로 둔 채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방통위의 이번 대책은 철학적인 면에서 매우 진보적이고 전향적이다. 의료나 전기와 같이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가치의 개념에 이동통신을 포함시킨 것이다. 방통위가 사회적·경제적 약자에게 따뜻한 조명을 비추겠다는 의지로 읽혀지기도 한다. 또 HDTV를 비롯한 향후 전개될 각종 정책 기조를 사전에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늠자 역할로서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반대로 가고 있다. 진정성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우선 발표 시점이 다소 뜬금없다. 인수위 시절 한 차례 요금 인하 파동을 거친 후 잠잠하던 차에 느닷없이 서민 지원책으로 튀어 나왔다. 촛불이 거리를 뒤덮은 뒤에야 그것도 급조한 흔적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 많지 않다. 절차와 형식도 미심쩍다. 지난 정부부터 물가 문제만 나오면 통신요금을 만지작거렸다. 말로만 시장경제지 모조리 민간기업인 통신시장만은 철저한 정부 통제 분야다. 차상위계층의 통계조차 분명하지 않으면서 이를 확대한다는 부분도 어색하다. 방통위 스스로도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인정할 정도니 설익은 것은 분명하다.

 더욱 의아한 것은 정부 여당의 생색내기다. 방통위는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연간 5000억원가량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몇몇 댓글에서 보듯 국민은 헷갈린다. 정부가 발표했으니 당연히 소요자금은 정부 예산 즉,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사정은 다르다. 부담은 전액 통신사업자가 전담한다. 목줄을 쥐고 있는 규제당국의 의지에 사업자들은 울며 겨자를 먹는 셈이다. 때마침 이날 공정위가 통신사업자 조사 방침을 밝혔다. 사업자들과 충분한 조율을 했다면 발표라도 기업과 공동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떳떳하다. 게다가 방통위는 가입비·기본료는 손대지 않겠다고 한발 더 나간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방통위와 한나라당이 통신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재주는 기업이 부리고, 생색은 정부여당 차지라면 곤란하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절실하다. 그러나 땜질 처방이어서는 안 된다. 유가환급을 10조원 하느니 차라리 그 돈을 학교에 투입해 사교육비 줄여달라는 것이 국민들 목소리다. 기초생활대상자의 통신비용 5000억원을 깎아주는 것보다 그만큼을 결식아동, 독거노인 식비에 지원하라는 것이 누리꾼 시각이다. 이 정부가 좋은 일 하고도 욕 먹는 이유를 당국자들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