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인터넷 실명제가 답인가

 알카에다는 진화 중이다. 진화의 도구는 인터넷이다. 한때 궤멸직전까지 갔던 테러집단이 인터넷을 활용하면서 전 세계 규모의 선전 선동전을 펼치고 조직원을 포섭하고, 작전지령까지 내려보낸다. 지난달 존 리버먼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장이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에게 서한을 보낸 것이 화제였다. 리버먼은 “테러집단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있다”며 “이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유튜브 모회사인 구글 CEO에게 전달했다. 슈미트의 대답도 분명했다. “(리버먼의) 나라에 대한 충정은 이해하지만 유튜브에는 커뮤니티 운용 규정이 있고 이를 어기지 않는 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리버먼은 유튜브 규정 개선을 촉구하는 선에서 물러났다. 테러방지를 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까지 감수하는 법률을 운용 중인 미국조차 인터넷 역기능에는 묘안이 없다.

 마침 서울에서 열린 OECD 장관회의의 주제는 ‘인터넷 경제의 미래’였다. 하지만 국내적 이슈는 이명박 대통령이 선점했다. ‘신뢰가 담보되지 못한 인터넷은 독’이라는 테제를 던졌다. 최근의 쇠고기 정국을 빗댄 것이란 풀이가 나오면서 사이버 공간이 시끌시끌이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발언의 타이밍 탓에 갖가지 억측이 나온다. 국가 정책에는 뒷짐이던 여당 의원들도 이 문제만큼은 재빨리 손을 쓴다. 인터넷 담론 공간의 역기능을 통렬히 비판하며 ‘실명제’를 띄웠다. 인터넷 촛불에 데인 정부 여당이 본격적으로 실명제를 추진할 것이란 분석이 압도적이다.

 억울하겠지만 오해 사기 십상이다. 정부가 반대여론을 제압하고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란 의심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정치적 함의가 포함된 전략이라면 단세포적, 아날로그 수준의 처방이다. 익명성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일부 누리꾼에게 정신적 압박 효과일 뿐 본원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지금도 제한적 실명제는 시행 중이다. 완전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역작용, 부작용이 사라지진 않는다. 인터넷과 누리꾼은 새로운 기술과 통로를 개발해 낼 것이다. 물론 힘으로 누를 수는 있다. 중국을 ‘본받으면(?)’ 된다. 티베트 사태에서 보듯, 검열과 통제가 존재한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엄연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체제다.

 능력 있는 실용정부라면 진단과 처방이 종합적이어야 한다. 첫걸음은 인터넷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유통매체인 포털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올바른 인터넷 사용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교육을 정규화하는 것이다. 반사회적 콘텐츠나 불특정 다수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해킹 등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익명의 커튼을 앞세운 사이버 인격 테러나 출처가 불분명한 유언비어 유포에도 강력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명제 안 해도 이 부문은 지금도 수사를 거쳐 오프라인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넘쳐나는 쓰레기 정보를 가려낼 줄 아는 지혜와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교육에서 비롯된다. 정규교과의 컴퓨터 사용법이 아니라 바람직한 댓글 문화와 저작권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본질적 대안이다. 사이버 공간에도 인성교육은 필요하다. 옥죄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문화를 바꾸는 길을 선택해 인터넷의 자정기능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정치는 상충되는 가치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