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피`정책 꾸물거릴 시간 없다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에 정작 핵심 주체인 정부는 뒷전으로 물러난 채 수수방관, 우려만 키우고 있다. 정부로서는 정책 입안 당시의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변화된 환경에 맞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피’는 한국형 표준이다. 즉 폐쇄형이다. 당초 정부의 목표는 ‘한국형 표준을 앞세운 세계 공략’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 서비스와 단말기 제조 능력을 갖춘 한국이 자체 기술과 노하우로 해외 진출을 이루겠다는 명확한 정책 의지가 배경이었다. 시행 당시에도 논란은 뜨거웠다. 마치 CDMA 표준을 밀어붙이던 모습과 비견됐다.

 하지만 지금의 ‘위피’는 말 그대로 반쪽에 불과하다. 내수시장에서도 비판의 목소리에 시달리고 수출에 필요한 체질강화는 먼 일이다. 심지어 외국업체들이 ‘통상장벽’이라고 공격하는 모습까지 연출된다.

 정부가 ‘위피’를 포기하는 순간 수많은 관련 업체의 도산과 기술 노하우는 휴지조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정책 당국자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정해야 한다.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현재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지, 아니면 세계시장을 겨냥해 개방형 ‘3.0 체제’로 진화하는 강력한 업그레이드 정책을 펼칠지, 혹은 전면 백지화로 갈지 분명한 지향점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업계 모두가 살 수 있다. 소관부처를 따지고 비판이 두려워 어물쩍 넘길 시기가 아니다.

 여기에서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외국업체들의 공격 논리다. ‘위피’ 탓에 한국시장에 진출을 못 한다는 것은 절반은 사실이지만 절반은 말도 안 되는 ‘억지’에 해당한다. 외국의 공세를 참작은 하되 휘둘리지는 말라는 것이다. 기술표준은 주권에 속한다. 일정 부분 진입장벽 역할도 한다. 통신시장에선 어느 나라건 기술표준, 사업자, 소비자의 세 가지 장벽이 존재한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RIM의 블랙베리, 노키아폰 등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위피’의 문제기도 하지만 사실은 시장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기껏 1만∼2만대 팔려고 ‘위피온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한국이 중국처럼 막강한 로컬업체가 없고 엄청난 수요층을 갖고 있다면 구글이건 노키아건 위피를 탑재한 한국형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한국에 목매는 퀄컴은 벌써 ‘위피온 브루’를 선보였다. 바 타입을 선호하는 국가와 폴더가 중심이 된 나라가 다르다. 사용 환경도 제각각이다. ‘한국판 블랙베리’라 불린 삼성 ‘블랙잭’도 내수에선 참패했다. 한국 소비자는 접근성보다는 사용 친화력과 디자인에 유혹을 느낀다. 무선인터넷 플랫폼이 아닌 패션으로서의 휴대폰 자체 경쟁력이 키워드인 시장이 한국이다. 외국계에게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한 수소의 수요층은 예상되지만 시장으로서의 한국은 매력이 부족하다. 이것이 그들의 한국진출 딜레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