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보고 왔습니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으니까요.”
중국 베이징 한복판의 신경질환 전문 병원 텐탄푸화병원에서 만난 예순 다섯 살의 미국인 할머니가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남편을 회복시키기 위해 미국 미주리주에서 날아왔다. 다발성 경화증은 면역 체계 이상으로 중추신경이 파괴돼 뇌가 서서히 퇴행하는 난치병이다.
이 할머니는 ‘희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던 중 인터넷에서 이 병원을 알게 됐다고 한다. 텐탄푸화병원은 자기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경 질환 치료 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자기 줄기세포를 분리·배양해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것이 허용돼 있기 때문에 이 병원에는 이처럼 ‘마지막 희망’을 찾아 건너 온 외국인 난치병 환자가 많이 있다. 2005년 설립 이후 20여개국 380여명의 외국인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이 병원은 외국 자본이 30% 들어와 있고 인터넷을 이용한 해외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마케팅팀은 세계 여러 나라 출신 직원들로 구성된 다국적군이다.
구매력과 지식을 갖춘 인구가 인터넷으로 세계 각지의 건강·의료 정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고 병원이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세상에서 국경을 따라 쳐 놓은 의료 시장의 울타리는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의 환자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자는 ‘메디컬 투어리즘’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여 병원이나 헬스케어 기업이 실제로 움직일 여지는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니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의 심정을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세계의 사람과 돈은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국은 흘러오는 곳이 될 것인가, 흘러나가는 곳이 될 것인가.
베이징(중국)=한세희기자<신성장산업부>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