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휴대폰 20년, 또다른 영웅들

[이택칼럼]휴대폰 20년, 또다른 영웅들

 엊그제 받아 본 한 통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했다. “1일로 휴대전화 20년을 맞이합니다. 축하해주세요”라는 짤막한 내용 이었다. 아차 싶었다. 우리나라 이동전화가 어느새 20년, 성년이 됐다는 반가운 마음보다 자책이 앞섰다. 명색이 ‘정보통신 전문 언론인’이라 자부하면서도 이동전화 생일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자료를 뒤졌다. 약간 헷갈렸다. 이동전화 서비스의 출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생일’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상업용 이동통신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1984년이다. 개인이 소지하고 다니는 지금의 이동전화가 아니라 자동차에 장착했던 카폰이 대상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휴대 이동전화 서비스는 1988년 7월 1일 한국이동통신(KT자회사였지만 후에 SK텔레콤으로 바뀐다)의 첫 전파에서 비롯됐다. 당혹스러웠지만 88년 7월1일은 ‘의미 있는 탄생일’ 이었다.

 짧은 호흡의 메시지를 본 순간 지난 20년의 기억이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아쉬움이 되어 파노라마 사진처럼 스쳤다. 산업적, 시장적 성공신화야 기록으로 또렷이 남아 있지만 정작 한 줄짜리 메시지에 오버랩된 것은 ‘사람들’이었다. 비록 누구도 챙겨주지 않지만 ‘함께했던’ 사람들끼리는 서로 축하하고 기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탓이다. 메시지를 날려 준 지인도 그 중 하나였다. 이동전화에 관련된 그 누구라도 열정과 도전만으로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축하해 주세요”라는 문장에서 통신강국 코리아를 건설한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의 모습이 읽혔다. 맨땅에서 시작한 이동통신 기술은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이다. CDMA를 최초로 상용화했고 터널이나 지하철에서 조차 음성과 동영상, TV까지 즐기는 세상을 만들었다. 전국의 모든 곳을 커버리지로 하지만 불통이나 음영지역이 발생해도 하루 이내에 해결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오지 곳곳에 기지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덕분에 네트워크 설계와 운용 노하우는 단연 글로벌 톱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말기 개발하고, 서비스 전략세우며. 마케팅하고, 관리하는 이들 역시 지난 20년 동안 젊음을 바치고 헌신한,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지난 10여년은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돈 벌려고 하는 일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과 신화는 나름대로 인정해야 한다. 휴대폰이 한국을 바꾸었고 그 인프라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진 가치가 됐다. 전 세계인 4명 가운데 1명꼴로 메이드인코리아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쇠고기 검역 주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이지만 통신 주권은 ‘사람들’ 덕에 완벽하다. 통신업계, 좀 더 넓히면 IT업계 ‘사람들’의 노력과 실력에는 누구도 시비걸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년 휴대폰’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요금에, 개인정보에, 심지어 약탈적 기업 이미지 덧씌우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양적 팽창 막바지인데 재도약할 새로운 동력 내놓으라는 압박도 거세다. 생일에 마음껏 자랑 한번 제대로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몰려 있다. 성장통을 앓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인 국민의 마음과 정서를 정확히 반영했기에 그간의 신화가 가능했으니 이번에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처 보내지 못한 메시지 답장은 이렇다. “축하합니다, 당신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촛불입니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