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카와 사장 떠난 `후지쯔`의 앞길은

구로카와 사장 떠난 `후지쯔`의 앞길은

 ‘구로카와 없는 후지쯔호(號) 순항할 수 있을까?”

 산케이신문은 최근 5년간 구로카와 히로아키 전 사장과 함께 한 후지쯔의 여정을 돌아보고 향후 회사의 전망을 내놨다.

 5년 간의 사장 활동을 접고 지난달 말 상담역으로 물러나 앉은 구로카와 히로아키 전 후지쯔 사장. 주주들은 그가 사장직 만큼은 후임 노조에 구니아키 상무에게 물려주더라도 회사 경영엔 손을 떼지 않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구로카와 전 사장은 “65세가 됐으니 이젠 내 인생을 찾고 싶다”며 주주의 예상과는 달리 ‘연절(緣切)’을 선언했다.

 구로카와 사장은 IT 버블 붕괴 이후 적자에 늪에서 허우적대던 회사를 흑자로 반전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주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무책임하다’고 질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주총장에서 퇴임 의사를 전하며 울먹이던 그를 아쉬움이 묻어난 박수로 격려했다.

 구로카와 사장이 취임한 2003년 6월 이전의 후지쯔는 IT 버블 붕괴 이후 불어닥친 충격파에 휩싸여 있었다. 2001년엔 3825억엔 적자에 이어 2002년에도 1220억엔의 적자를 냈다. 라이벌 기업들은 ‘V자’ 곡선을 그리며 적자 늪에서 탈출한 반면 후지쯔는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허덕였다. 당시 도시바는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로, 미쓰비시전기는 공장자동화 등 신사업 발굴로 활로를 찾아냈다.

 구로카와 사장 취임 이후 직원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 사내 인트라넷 ‘구로씨 통신’이 생겨나며 전 임직원이 일심동체가 됐고, 될성 부른 사업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 구사로 후지쯔는 다시 살아났다. 핵심 사업이던 정보시스템 분야에 힘을 모으는 대신 PDP·LCD사업을 매각하고, 플래시메모리 등의 반도체사업은 분사시켰다. 이후 회사는 흑자 궤도에 다시 올라 서며 건강한 체력을 회복하게 됐다.

 구로카와 사장은 퇴임사에서 “기업 경영은 변화무쌍하다. 현역에게 더 많은 기회와 권한을 주기 위해 용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장에서 단계를 밟아왔던 자신을 뒤돌아 볼 때 후배들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려했다는 해석도 따른다.

 구로카와 사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 받은 노조에 구니아키 신임 사장은 최근 3년간 소프트웨어·서비스사업의 채산성을 개선하며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공공분야 인맥도 튼실하다. 하지만 미국 주재 경력이 10년 가까워 사내 인지도가 떨어지고, 일본 내 사업 경험이 부족해 그의 수완은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해외사업 확대에 따른 후유증, 반도체 등 하드웨어사업 축소 등 회사 경영에 위협적인 과제는 산적해 있다. 산만한 회사를 한 데 모아 통솔한 구로카와 전 사장이 빠진 구멍은 크다. 그러나 구로카와 없는 후지쯔를 건강한 모습으로 유지, 발전시킬 때 진정한 리더십이 인정된다는 게 후지쯔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정훈기자 jh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