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불법 도청 협조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던 주요 통신업체들에 면책 특권을 주는 ‘해외정보감시법(FISA)’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일명 ‘스파이법’으로 알려진 FISA는 9·11 테러 이후 미 행정부가 테러리스트 및 스파이 색출을 목적으로 영장 발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특정인을 도청하는데 협조한 통신업체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상원은 찬성 69표, 반대 28표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공개적으로 의회를 압력해 온 부시 대통령은 상원의 표결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안에 곧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 정보당국은 별도의 영장이 없어도 통신사업자들의 협조를 얻어 외국인들의 이메일이나 통화 내용 등을 감청할 수 있으며, 국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특별법원의 영장을 받아 실시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영장 없이 정보 당국의 불법적인 도청에 협조해온 AT&T, 버라이즌 등은 면죄부를 받게 됐다. 통신회사들은 그간 불법 도청 혐의로 고객들로부터 40여건의 민사소송을 당해 수십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해야할 처지에 놓였었다.
이날 상원표결 과정에서 일부 의원은 면책조항 삭제를 요구해 이를 놓고 별도의 표결이 실시됐으나 삭제에 반대하는 표가 66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법안이 통과되자 시민단체 등은 “정당한 이유 없이 국가가 개인들의 전화와 이메일을 감시해 사생활을 침해하게 됐다”고 즉각 반발했다. 반면 미 정부 당국은 “이 법안이 미국인들에 대한 도청을 최소화하는 반면, 테러국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본드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 법이 미국의 안전과 자유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밝혔고, 러스 페인골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타협이 아니라 일방적 강요”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는 전체법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진보 성향의 의원들과 유권자 등 지지층으로부터 크게 반발을 샀다.
정지연기자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