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
지금은 지식산업 시대다. 이에 따라 지식을 권리로 만들어주는 특허는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개인이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하루라도 빨리 권리로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허 출원 규모로 세계 5위 안에 드는 특허 강국인 우리나라는 그동안 특허 심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의 성과로 지난 1996년 37개월에 달하던 특허 심사기간이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심사처리기간인 10개월을 달성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해마다 늘어나는 특허 출원으로 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0∼30개월씩 걸리는데 이와 비교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심사 기간이 단축되면 출원하는 쪽에서는 특허 여부를 보다 빨리 확인할 수 있게 돼 시간이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도 단축기간만큼 늘어나게 돼 여러 가지로 유익하다. 하지만 특허 심사 기간의 단축이 심사 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허심사 품질이 부실하면 기업이 특허를 받더라도 그 실효성에 끊임없는 도전을 받게 되며, 그로 인해 불필요한 특허소송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국가 전체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더욱이 자금과 조직이 충분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아무리 좋은 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더라도 만일 소송에 휘말려 패하기라도 하면 하루아침에 시장에서 퇴출되고 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심사 기간이 짧아지면 우리나라 심사 결과를 다른 나라의 특허심사에서 활용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 특허청이 특허 심사의 주안점을 빠른 심사에서 고품질 심사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첨단 기술산업에 몸담고 있는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실 LG디스플레이도 사업 초기부터 내부적으로 특허 경쟁 체제를 구축하고 수익창출을 위해 출원 확대를 거친 특허 포트폴리오 강화에 중점을 둔 양(量) 위주의 정책을 실시해 왔다. 그 결과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국내외 특허 출원이 급격하게 증가, LCD 업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회사가 됐다. 하지만 2006년 이후 특허 분쟁이 증가하면서 특허의 품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특허 경쟁력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안정화된 기술에는 특허출원 기준을 강화해 질 위주로, 그리고 핵심 및 미래 기술에는 국제특허 출원과 미국 출원 등 해외 특허를 확대하는 전략으로 특허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대만 경쟁사와의 특허침해소송에서 승소해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하는 성과도 낳았다.
LG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특허 정책이 양에서 질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계 특허를 향한 고도의 출원전략이 펼쳐지고 있으며, 글로벌 특허를 겨냥해 심사 기간에서도 전략적으로 다양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나온 특허청의 발표여서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특히 일률적이던 심사처리기간도 기업별, 기술분야별 다양한 요구에 맞춰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은 기업친화적 정책 기조를 잘 반영한 것이다. 이미 전문 지식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우수한 심사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특허청이기에 ‘스피드’의 장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강하고 튼튼한 특허’를 위한 고품질 특허 심사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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