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한중’ 땅을 눈앞에 두고 철수했듯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16일 17시로 예정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비공개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유비와 맞선 조조에게 한중 땅은 ‘닭의 갈비(계륵)’였다. 당장 먹을 것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버리기에는 아까웠던 것. 최 위원장에게 ETRI가 계륵 같았을까. 훗날을 기약하되 방문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고 말았다.
최 위원장의 ETRI 방문 계획에 쏠린 방통위 직원들의 시선은 남달랐다. 옛 정보통신부 시절, 예산을 비롯한 각종 연구개발사업의 약 80%를 관장했던 ETRI를 지식경제부에 고스란히 내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위원장의 ETRI 방문을 ‘영토회복을 위한 첫걸음’으로 여기는 직원이 많았다. 방통위는 물론이고 지경부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최 위원장은 이날 ETRI를 찾아가 몇몇 실험실을 둘러보고 연구성과들을 시연해볼 계획이었다. 지난달 17, 18일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관한 OECD 장관회의’에서 ‘IT코리아 위상’을 체득한 뒤 세운 새 목표인 ‘인터넷 내 에너지를 경제 성장동력에 연결하기’ 위한 첫단추 꿰기였던 셈이다. 방통위 밑에 잘 갖춘 기술개발 기관이 없는 것도 최 위원장의 ETRI를 향한 발걸음에 무게를 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조가 당장 한중 땅이 필요하지 않았듯 최 위원장에게 ETRI가 급한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의 집(지경부) 세간(ETRI)에 ‘눈독을 들인다’는 오해를 살 필요가 없을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최 위원장이 그리는 큰 그림(?)에 ETRI가 ‘너무 작은 배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조의 위나라는 한중에서 후퇴했으되 나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무너뜨리고 그 땅을 차지했다. ETRI 방문을 취소하고 국회로 발길을 돌리려는 최시중 위원장의 선택이 어떤 그림을 완성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은용기자<정보미디어부>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