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진정한 산업융합의 조건

[미래포럼]진정한 산업융합의 조건

 얼마 전 정부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이끌 성장동력으로 IT를 기반으로 주력산업과 융합해 신사업을 창출하는 이른바 ‘뉴 IT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경쟁력 있는 IT 분야에 기존의 주력산업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면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큰 방향에서는 올바른 정책인 듯하다. 그러나 진정한 산업 간 융합은 단순히 산업과 산업을 물리적으로 섞는다고, 같이 붙여 놓는다고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진정한 융합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산업의 융합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의 융합이어야 한다. 관련된 기술이나 제품을 결합한 복합제품으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잠재욕구를 보다 잘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으로 기존의 시장들이 통폐합되면서 새 시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애플 아이팟의 성공은 개성 있는 디자인을 갖춘 하드디스크형 MP3플레이어라는 하드웨어적 측면보다는 소비자에게 음악을 보다 편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아이튠스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기존의 음반시장 구조를 일시에 재편했다. 컨버전스의 대명사인 첨단 휴대폰은 단순히 여러 기술의 복합체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생활 욕구를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줌으로서 과거의 여러 개로 분리된 시장을 통합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수요가 없는 곳에 산업 융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산업의 융합은 관련업계를 모아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와 인프라의 융합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서로 다른 산업끼리의 화학적 결합이 가능하도록 연구개발이나 상호교류 촉진을 위한 장이 제공돼야 하며 수요자인 업계 시각에서 정책과 제도의 융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특히 전자상거래, 콘텐츠, 인터넷광고 등과 같이 이미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 정보통신과 산업, 문화, 과학기술 등 각 부처가 자신의 영역임을 주장하면서 업계로 하여금 어느 쪽에 줄서기를 해야 할지 눈치 보게 했던 일이 앞으로 새로운 융합의 분야에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융합의 분야에서는 관련 부처가 모두 함께 모인 협의체를 구성, 각 부처의 역할과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통합된 법규와 제도를 마련함으로서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업계가 정부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신산업창출에만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업의 융합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아이디어와 사고의 융합을 통해 창출돼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산업의 창출은 풍부한 아이디어와 사고의 다양성을 필요로 하며 융합도 이러한 다원성을 가진 환경에서만이 가능하다.

지금은 최첨단 디스플레이 소재로 각광받는 유기발광다이오드(EL)는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한 연구원이 20여년간 연구한 집념의 산물이다. ‘빛나는 물질’에 관심을 가진 오오니시 연구원이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회사에서 정식 프로젝트로조차 인정받지 못했고 한동안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회사는 성과가 없으니 연구를 그만두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만일 스미토모화학이 오오니시 연구원이 가진 사고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성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산업의 창출은 이처럼 획일적인 사고에서 탈피해 새롭고 다양한 사고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데서 이루어진다. 지나간 시대의 방식만 고집하고 다양성을 거부하는 사고, 80년대 경제개발 시대의 관 주도의 일사불란한 추진만으로는 새로운 융합이 만들어질 수 없고 만들어진다고 해도 생명력이 없는 죽은 산업이다.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또 새로운 혼과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추억이었던 건물과 하드웨어와 같은 유형자산 중심의 융합이 아니라 정신과 혼, 무형자산이 중심이 되는 융합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고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오창호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compino@hansh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