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거래 구조의 문제점에 불만이 많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입 인력에 대한 헤드카운트, 발주자의 능력부족, 덤핑, 불공정한 협상, 추가·변경에 대한 보상부족 등의 단편적인 방법으로는 원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가 다른 산업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별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는 해결을 보기가 어렵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다를 이유도 없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부족이 아니라 순전히 관리부재다. 먼저 소프트웨어 업계에 전문가들이 설 땅이 없다. 자격증은 철저히 무시되고 인정도 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장롱자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리려면 철저히 건축업계를 배워야 한다.
첫째, 건축업계는 적산(공사의 실비를 정확히 산출하는) 기준이 성립돼 있고 가격을 표준화할 수 있는 요인은 ‘설계와 시행(공사)의 분리가 확립돼 있다’ ‘시행 업무내용·작업이 유형화돼 있다’는 두 가지다.
둘째, 설계의 성과물(설계도, 수량계산서)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행 적산이 가능하게 된다. 적산할 수 있는 것은 ‘수량산정’ ‘생산량’ ‘인건비, 재료단가’ 등이 표준화돼 있기 때문이다. 생산량은 ‘단위당 생산량’이라는 것으로 표준화돼 있고 ‘단위당 생산량’은 과거 실적으로 만들어진다.
셋째, 유저 측도 건축물을 보는 눈이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건물은 전문잡지에 시행회사의 수주액이나 면적 등이 공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시스템의 ‘가격 표준화(적산기준)’를 실현하려면 설계와 개발을 분리하고 그 분리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건축업계와 같은 적산기준을 정보서비스업에 적용하면 요구 정의의 애매성 해소로 벤더는 이익률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에 오프쇼어 개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건물을 발주할 때 건축설계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고 표준화된 설계도와 이에 근거한 견적을 제시하도록 하고 건축회사에 시행을 의뢰한다.
설계도와 견적이 없으면 공사에 착수할 수 없다. 설계비용은 공사총액의 5∼10%다. 시행용 견적을 위해서 상세한 공종별로 인건비, 재료비, 제경비 등이 적산기준으로 ‘월간물가자료’ 등에 공표하고 있다.
한편 정보시스템 업계에서는 설계와 개발이 분리돼 있지 않고 견적 시에는 설계(요구정의, 기본설계, 상세설계), 개발(코딩, 테스트)을 포함하는 전체 비용이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작업내용 일람은 작성하지만 하나하나의 상세 비용이 업계 표준 값으로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설계도가 정해지지 않아 업무범위가 불분명하고 개체관계도(ERD:Entity Relation Diagram)나 데이터 흐름도(DFD:Data Flow Diagram)가 없는 상태에서는 표준 값이 아닌 경험 등에 근거해 총비용을 견적할 수밖에 없다. 여기를 개혁하지 않으면 견적과 실적이 크게 차이가 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월간물가자료’ 등에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의 기술자 요금을 게재하고 주요 지역별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시스템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의 평균요금을 발표해야 한다. 소프트웨어공학센터(가칭)를 설립, 이러한 데이터를 체계적이고 충실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 유저는 벤더들보다 신속하게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변혁을 요구한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는 ‘소프트웨어라서 어렵고 다르다’는 것으로 특별히 대우해 주지 않는다. 건축업계를 이해하고 배워야 할 것은 철저히 배워야 산다. IT전문가들의 냉철한 판단과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심기보 정보통신기술사협회 회장 shimkb@khn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