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OECD 국가 중 안전사고 사망률 1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사망,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193명 사망 등 우리는 수많은 대형 참사와 매년 발생하는 스키장 리프트 정지 사고 등 반복되는 안전사고 속에 살고 있다.
안전사고란 예방이 가능한데도 부주의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자연재해와 비교되는 용어다.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 원인에 조금만 신경쓰면 파악할 수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꼬집어 안전불감증이라고 한다. 그동안 안전지대였던 통신 분야도 이러한 인명 사고를 야기시키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최근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에 자동으로 발신자의 위치파악이 곤란한 긴급통화를 두고 이를 수용할지 말지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 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고민을 먼저 하지 않는 것일까.
외국의 일부 인터넷전화 사업자는 가입자가 직접 위치정보를 등록하게 해 긴급통신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니 부족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긴급통신으로 번호이동을 시행해도 괜찮다는 것이 수용하자는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불완전한 긴급통신으로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외국에서는 인터넷전화기에 GPS 수신기를 부착한다거나 인터넷전화 IP주소를 집주소와 연계해 위치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등 후속대책으로 긴급통신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번호이동 시 이런 기술을 먼저 고민하고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보안문제다. 최근 외국에서 국내 인터넷전화망을 해킹하고 들어와 다른 고객의 번호로 수백만원대의 국제전화를 이용했다고 한다. 글로벌 보안업체인 시만텍과 국내 대표 보안기업인 안철수연구소에서도 10대 보안위협 트렌드로 인터넷전화를 꼽고 있다.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이란 시내번호를 인터넷전화에서도 사용하는 것이다. 번호이동은 그래서 저렴한 인터넷전화를 활성화해서 통신비를 절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터넷전화가 싸다고 하는데 이런 위험요소를 떠안을 만큼 정말로 저렴한지 궁금하다.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는 쪽에서는 인터넷전화 번호 ‘070’이 스팸으로 인식돼 이미지가 좋지 않고, 기존의 전화번호를 변경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고객이 인터넷전화 가입을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어느 회사의 인터넷전화는 1년도 되지 않아 70만 가입자를 확보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번호이동을 시행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소비자는 정말 ‘070’을 스팸으로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는 품질 외에 인터넷전화의 긴급통신 및 보안 문제는 모르는 것 같다. 더욱이 번호이동은 기존 시내전화를 반드시 해지하고 사용해야 하는 제도다. 번호이동 시행이 소비자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닌지 분석해야 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제 긴급통신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인터넷전화의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규격을 표준화하는 등 동기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고민하지 말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다. 소비자를 담보로 정책을 시험해서도 안 되고,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희생으로 삼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노력을 경주하는 것만이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최단거리를 갈 수 있는 정책 방향이다. 이지형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e비즈경영학 부교수 leejeehy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