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이통시장의 ‘마약’ 보조금

 이동통신 시장에서 보조금은 마약과 같다. 소비자는 ‘공짜폰’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가입자 확보에 목숨을 거는 사업자들에겐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약발을 자랑한다. 휴대폰 제조업체엔 시장 창출의 든든한 원군이다. 문제가 심각하다며 강제로 끊어버리면 금단현상에 시달린다. 당장 시장이 얼어붙는다. 공짜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갑자기 수십만원을 지급해야 하니 ‘비싸다’고 아우성이다.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일선 대리점들은 편법 불법 지급의 묘안을 강구한다. 단말기업체 역시 전략상품인 휴대폰을 내수부터 죽인다고 불만이다. 수익에 보탬이 될 것 같은 사업자들조차 매출 정체성을 참아내지 못한다. 이도저도 못하는 정책 당국은 보조금 금지와 허용을 왔다갔다한다. 마약의 속성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중독과 금단현상을 동시에 겨냥한 의학적 처방이 요구된다. 모르핀은 적절히 활용하면 지구상 최고의 진통제다. 소비자와 시장, 산업이 수용할 만한 적당량이 필요하다. 정부의 몫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자들이다. 어차피 보조금을 집행하는 주체다. 최소한의 통제력을 확보한 채 뿌려야 한다. 경쟁의 룰과 방식이 변하지 않고 손쉬운 길만 선택하는 것은 재앙이다.

 초일류기업 취급받는 SK텔레콤과 KTF의 2분기 실적은 ‘쇼크’다. 영업이익이 최악이다. 심지어 KTF는 상장 이후 처음 분기 손실을 맛봤다. 원인은 마케팅 비용의 폭발적 증가다. 대부분 보조금이다. 3G 시장에서 격돌한 양사의 ‘돈 싸움’ 결과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희망적으로 볼 수도 있다. 3G로의 가입자 전이를 위한 불가피한 투자다. 업의 특성상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할 ‘비용’이다. 덕분에 KTF는 3G 1위라는 타이틀과 ‘가입자당매출(ARPU)’의 상승을 얻었다. SKT는 SMS요금 인하 이후 ARPU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란 예상을 깨고 안정화에 성공했다. 매출도 늘었다. 3G를 포함한 순증가입자 역시 타사를 압도했다. 이들에는 보조금에 따른 의무약정제로 50% 이상의 가입자가 묶이는 내년에는 이익률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넘친다. 유일한 이익 성장을 시현한 LG텔레콤은 경우가 좀 다르다. 리비전A라는 고립된 기술규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최대한의 전략적 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확실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고민이 가득한 웃음이다. 리비전A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묘수에 묘수를 연발해야 할 상황이다. 올해 50만명 목표인 ‘오즈’로는 감당이 안 된다. 버티면서 4G에서 정면승부 한다지만 상대는 규제당국과 ‘덩치’ SKT, KTF다.

 2분기 실적이 보여준 것은 이통사들의 현주소다. 신시장 만들고 경쟁하는 것이 기껏 보조금 투입이었다. 통화품질과 요금, 서비스라는 본원적 경쟁력으로 견주는 일은 실종됐다. 3G 시장도 영상통화와 전 세계 단일통화권으로 포장했지만 킬러앱은 보조금이었다. 어느새인가 이통시장에는 ‘경쟁=돈싸움’이라는 공식이 뿌리내렸다. 세계 최고의 망 운용 노하우와 서비스 경쟁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이통사들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네가 하면 나도 할 수밖에 없다”는 시장 구도지만 보조금이란 ‘마약’부터 찾을 단계는 지났다. 최강의 기업 역량을 가진 우리 이통사들이 언제까지 이토록 ‘이상한 장사’를 계속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요금 내리고 네트워크에 투자해라. 그러면 박수라도 받는다.

  이 택 논설실장 et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