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전파’가 있었다. 우주가 생겨난 때로부터 물체를 따라 전하(電荷)가 흐르면서 전기 마당(場)과 자기 마당을 만들고 두 마당이 서로 교차·유도하며 물결치듯 앞으로 나아갔던 것. 지구 첫 생명체로 추산되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나타난 35억년 전이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500만∼600만년 전이든, 인류가 휴대폰을 쓰는 2008년 8월이든 언제나 전파가 공기처럼 흘러다녔다. 인류는 지금 인공적인 매개물 없이 우주에 떠다니는 3000기가헤르츠(㎓)보다 낮은 전파의 0.1%인 3㎓ 이하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경제·생활 자원(주파수)으로 쓰고 있다. 전자신문은 방송통신위원회·한국전파진흥원과 함께 이 같은 전파의 원초적 친숙함과 편리성을 독자께 알기 쉽게 풀어드리고자 한국전자파학회 석학들의 감수를 받아 연재물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전파는 우주 본질로서 언제 어디서나 물결치듯 움직인다. 때로는 정제되어 휴대폰에 잠시 붙들렸다가 공중으로 튕겨나간 뒤 다른 휴대폰에 닿고, 때로는 노래하는 이효리 모습 등을 짊어진 채 공중을 날아 안방 TV에 부려놓기도 한다.
움직이는 속도가 워낙 빨라 똑, 딱 하는 순간(1초)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는 ‘수퍼맨’에 버금간다. 즉 1초에 약 30만㎞를 날아가니 수천, 수만 ㎞ 떨어진 곳이라도 ‘TV 생방송’이 가능한 것이다.
TV가 미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다. 미 RCA사가 ‘8×10인치’ 화면(TV)을 박람회장 곳곳에 설치했고, 박람회 개막연설자로 나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TV에 등장한 첫 미국 대통령으로서 “박람회를 인류에 바친다”고 말했다. 그때 박람회에서 루스벨트 이미지를 시청하며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친 하루”를 보냈다던 네 살 꼬마 칼 세이건은 1985년부터 ‘외계 문명의 소리(신호)’를 듣기 위해 전파를 끌어안았다.
칼 세이건이 합류한 외계 문명 탐사계획인 ‘메타(META: Million-channel Extra-Terrestrial Assay) 프로젝트’는 우주로부터 지구에 닿는 100만개 채널(전파)을 분석하겠다는 것. 하버드 오크리지 천문대의 지름 84피트짜리 파라볼라안테나를 이용해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보이는 하늘 전체를 탐색했다. 1985년 9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날, 세이건과 물리학자 폴 호로비치 옆에는 연구비 10만달러를 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서있었다.
메타는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로도 불렸다. 1992년부터 미 항공우주국(나사) 에임스연구소와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이 SETI를 지원하면서 매일 35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 외계 전파들을 분석했다. 이후 민간 ‘피닉스 프로젝트’로 바뀌어 200광년 안에 있는 1000개 별들에서 출발해 지구에 닿는 1∼3㎓ 전파를 집중적으로 탐사·분석하고 있다.
최승언 서울대 교수(지구과학교육과)에 따르면 우리 은하 내 단일 성계(星界)의 절반 정도인 ‘2.5×10의 10승 개’에서 태양계 지구처럼 생명이 탄생해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수많은 성계 안 여러 행성에 생명체가 있고, 그 생명체가 지구인 만큼 문명을 이뤘다면, 그들과 대화할 유일한 수단이 ‘전파’라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계산한 ‘인류와 교신할 가능성이 있는 외계 문명 수’는 비관적으로는 ‘2×10의 -5승’, 낙관적으로는 ‘10×10의 6승’이다. 그만큼 실낱이랄 수조차 없을 만큼 희박한 가능성을 확인해 인류 존재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할 유일한 끈이 전파다.
태초에 있었고 지금도 우주와 지구를 쉴새없이 넘나드는 그 전파가 지금 당신의 얼굴을 스친다. 때로는 당신의 손(휴대폰), 집(TV·무선전화기·전자레인지 등), 길(네비게이션, 무선인터넷)에 함께 있다.
이은용기자 eylee@
공동기획:방송통신위원회, 한국전파진흥원, 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