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472년간의 왕조사를 기록한 역사서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이 사료는 분량이 수레 50여대에 달한다.
막대한 양에, 장기관 보관이 어려운 종이 재질인데도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보존된 것을 보면 기록문화를 중시하는 조선의 보존 의지와 복합적인 재해복구 정책을 느낄 수 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는 재해복구 및 데이터보호 측면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아니었나 싶다.
조선은 15세기에 들어 분량이 크게 늘어난 실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유사시 백업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는데, 그때 나온 해결책이 오늘날 원격지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하는 방식과 유사했다. 조선은 먼저 실록의 원본 외에 사본 세 부를 추가로 만들고, 이를 지방 요처에 사고를 지어 보관하도록 했다. 분산 보관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탁월한 판단이었음이 증명됐다.
전란의 와중에 왜군들은 4대 사고 가운데 세 곳을 불태워 버렸다. 전주사고본도 소실 위기에 처했지만 몇몇 유생들이 목숨과 바꿔 가까스로 지킬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전주사고본을 재출간해 네 부의 사본을 만들었고, 이를 지방 요처에 지은 사고에 분산 보관했다.
하지만 이 5대 사고본의 운명도 그리 순탄치 않았다. 먼저 한 부가 민란의 와중에 불탔고, 다른 한 부는 일본이 가져갔다가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됐다. 다행히도 두 군데 실록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남북한을 합쳐 아직 세 부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북한에는 전쟁 와중에 가져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소장한 적상산사고본이 있고, 남한에는 서울대 규장각에 정족산사고본이, 부산 정부기록문화보존소에 태백산사고본이 각각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후 전산화 과정을 거쳐 국역본과 원본 이미지를 담은 영인본이 CD와 책자로 일반에 공급됐고,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어렵사리 지켜왔던 실록이 IT의 힘을 빌려 보편화됨에 따라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매년 수십, 수백편의 연구결과와 저작물을 내놓는다.
실록의 보존과 기업의 재해복구는 그 기록 형태와 보존 방식, 백업 및 복구 체계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안전한 보존과 빠른 복구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현재도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재해복구정책을 세우고, 백업센터를 짓고 있지만 비용과 인력 등 여러 요인에 가로막혀 대상을 핵심 업무에 한정하거나 재해 시 만족할 만한 복구 시간과 수준을 보장받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어쩌면 미래에 등장할 가장 이상적인 재해복구 기술은 인간의 두뇌를 이용하는 ‘기억’과 몸에 밴 ‘경험’ 같은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스템적으로는 아서 C 클라크의 명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지능형 컴퓨터인 ‘할(HAL)’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스템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컴퓨터가 순식간에 원인을 파악하고, 최적의 방법으로 조치를 취해 신속하게 원상복구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만약 이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기업은 더 이상 재해에 따르는 시스템 복구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래가 아닌 현재 선택 가능한 기술 중에는 ‘가상화’가 이러한 속성과 가장 많이 닿아 있다. ‘가상’이라는 말도 ‘기억’이나 ‘경험’처럼 비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가상화 기술은 이미 현실에서 사용되는 실제적인 ‘기술’이며, 적지 않은 기업이 가상화 기술을 이용해 재해복구 센터를 구축하여 구축 및 운용 비용을 줄이고 비즈니스 안정성을 향상시켰다.
100% 안전한 재해복구 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소중한 자산은 항상 당대 최상의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지고, 보호돼 왔다. 예기치 못한 각종 재해와 복잡성으로 인한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화두로 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상화는 조선의 4대 사고처럼 우리 시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재해복구 기술이다.
현태호 VM웨어코리아 사장 thhyun@vmwa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