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악수’ 반복하는 일본 전자업계

‘차가운 악수’ 반복하는 일본 전자업계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고, 훗날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설 수 있는 ‘프레너미(frenemy;friend+enemy)’ 산업 생태계에서 일본 전자업체들이 ‘차가운 악수’를 거듭하고 있다.

올들어 소니와 샤프, 샤프와 파이어니아, 파이어니아와 마쓰시타전기, 마쓰시타전기와 히타치제작소와 캐논 등 일본 전자업계 대표 주자들은 ‘적과의 동침’으로 표현되는 제휴 및 통합의 경영전략을 구사 중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전자분야 선두 업체들의 몸부림인 셈이다. 산케이신문은 최근의 추세를 정리한 기획기사를 통해 일련의 제휴가 겉으로 드러난 기업 간의 신뢰보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차가운 악수’라 표현하고 있다.

◇어색한 제휴=지난 2월 소니와 샤프는 LCD 패널 공동생산에 관한 제휴를 맺었다. 과거 삼성전자와 소니의 제휴에 버금가는 빅 뉴스다. 2009년부터 10세대 LCD 패널을 생산하게 될 사카이 공장엔 3800억엔(약 3조5628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다.

패널의 대형화는 대량생산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LCD TV의 가격이 매년 20∼30%씩 하락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0세대 패널 생산공장 공동 투자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두고 일본 산업계는 ‘세계 시장 장악을 위한 TV 업계의 지각변동’으로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제휴선언 기자회견장에서 두 회사 사장들은 서로 눈을 거의 맞추지 않은 채 어색함을 드러냈다. 그 순간에도 가전매장에선 소니의 ‘브라비아’와 샤프의 ‘아쿠오스’ 모델이 양보없는 치열한 시장 경쟁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치바 마쿠하리에서 개막된 일본 최대 디지털가전제품 전시회 ‘시테크 재팬 2007’에서 두 회사는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평판패널 두께를 놓고 라이벌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또 샤프는 소니와 제휴하기 2개월 전 도시바와 제휴했다. 샤프는 도시바에 LCD 패널을, 도시바는 샤프에 TV용 LSI를 공급하는 게 골자다. 당시 타도 대상은 소니였다.

◇위험한 제휴=서로의 이익이 된다면 과거의 갈등을 잊고 제휴할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한 제휴는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제휴나 경영통합이 실패로 치달은 사례도 드물지 않다.

지난해 7월 일본빅터(JVC)와 AV 전문업체 캔우드는 회사간 통합을 전격 선언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JVC의 모회사 마쓰시타전기 오츠보 후미오 사장은 “JVC와 상승효과를 추구해왔지만 체질적으로 서로 맞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실감했다”는 말로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시절 JVC에 자본 참여했지만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별로 없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JVC는 또다른 파트너로 캔우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마쓰시타전기와 히타치제작소, 캐논 간의 제휴는 샤프의 대항마다. PDP 진영의 파이어니아는 지난해 가을 제휴한 샤프와는 별개로 PDP 분야에서 샤프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마쓰시타와 손잡아 업계 관계자를 아연케 했다. 샤프와 마스시타에 양다리를 걸치는 대담한 전략이지만 성공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통합이나 자본 참여를 포함한 제휴 등의 업계 재편은 사업이나 기술의 통합 뿐만 아니라 기업문화나 기업경영 방식의 융합, 지적재산권 등의 요소도 함께 고려돼야 하지만 이를 간과한 임시방편의 제휴는 득보다는 실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최정훈기자 jh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