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과 겹친 올 여름 휴가는 우리나라 선수의 잇따른 금메달 낭보로 그 어느 때보다 시원했다. 하지만 서울을 떠나 전국 호텔 혹은 콘도 등에서 TV를 시청하려던 피서객들은 리모콘을 꽤나 여러 번 눌러야 했다. 올림픽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지상파 TV 채널이 서울과 달랐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KBS 1TV는 9번, MBC는 11번, SBS는 6번인데 서울만 벗어나면 채널 번호가 바뀌고, 자동차 여행을 하다보면 라디오 채널이 뒤죽박죽돼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게 되는 경험을 이번 여름에도 반복한 것이다.
TV가 사용하는 전파는 초단파(VHF) 또는 극초단파(UHF)다. VHF는 30 MHz ∼ 300 MHz, UHF는 300 MHz ∼ 3 GHz의 주파수를 말한다. MBC를 보려 할 때 11번을 틀어라, KBS2를 보려 할 때 9번을 틀어라하는 말은 TV 채널 11 (198 ∼ 204 MHz), TV 채널 9번 (186 ∼ 192 MHz)을 틀어라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TV 방송이 사용하는 VHF 주파수는 54 ∼ 216 MHz (메가헤르츠), UHF 주파수는 470 ∼ 806 MHz 이다. 각 채널에 할당되는 주파수 대역폭은 6 MHz 씩이다. 채널9(KBS 1TV)는 186∼192MHz 의 주파수로 전파를 발사한다.
채널을 지정 할 때는 바로 인접한 채널은 전파 간섭 염려가 있어 가급적 피한다. 그래서 7, 9, 11번 식으로 나간다.
그렇다면 SBS는 왜 7번(KBS2)과 가까운 6번을 선택했을까? 6번과 7번은 번호는 하나 차이지만 실은 무척멀리 떨어져 있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6번채널의 주파수 대역은 78∼84MHz인데, 7번은 다른 채널이 15개쯤 들어갈 만큼의 구간을 훌쩍 건너뛰어 174MHz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의 주파수, 즉 84∼174MHz 대역은 FM방송과 항공기 교신 등에 사용된다.
VHF처럼 파장이 짧은 전파는 직진성이 강하다. 높은 산이나 커다란 빌딩을 만나 면 구부러져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도로 튀어나온다. 이런 장애물 때문에 생기는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해 중계소가 전국 방방곡곡 설치됐다.
중계소는 앞 전파를 받아 장애물 뒤로 넘기는데, 이때 채널을 바꾸어준다.
동일한 채널로 중계하면 앞전파와 새로 가다듬은 뒷전파가 섞여 품질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같은 소리를 한꺼번에 내면 듣는 사람이 불편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해서 남산송신소를 9번으로 떠난 KBS1 채널은 관악산을 지날 때는 25번으로, 용문산을 넘을 때는 32번이 된다.
이런 중계소가 전국에 400개쯤 있으므로, 채널도 그만큼의 빈도로 바뀐다. 강원도만 하더라도 춘천(화악산·봉의산) ·원주(백운산)·강릉(괘방산)·삼척(봉황산)에 중계소가 설치돼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 전파가 이들 지역 중계소를 거치며 채널 번호 또한 달라진다. 같은 지역이라도 중계소가 달라지면 채널 번호도 변경된다. 예를 들어 같은 춘천지역이라도 봉의산 중계소를 거친 KBS1 TV는 채널 번호가 12번이지만 화악산 중계소를 거치면 8번으로 바뀐다.
FM 라디오 역시 VHF 대역 안에 있는 주파수 (88 MHz ∼ 108 MHz)를 사용하기 때문에 TV 중계와 같은 방식으로 채널이 바뀐다. 하지만 파장이 비교적 긴 중파를 사용하는 AM방송은 전파가 웬만한 장애물을 구부러져 넘어가는 성질(회절성) 을 갖고 있기 때문에 FM만큼 많은 중계소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김원배기자 adolf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