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돈줄’ 전자증거수집, 변호사 ‘밥줄’ 위협

 한때 실리콘밸리 로펌의 ‘돈줄’이었던 전자증거 수집(e-discovery)이 이제 미국 변호사들의 ‘밥줄’을 끊어놓을 수 있는 위협 요소로 바뀌었다.

 대형 IT 기업의 소송에서 전자증거 수집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최근 로펌의 주요 고객인 IT기업들이 변호사를 고용하는 대신 줄줄이 전자증거 시스템 전문업체를 인수하거나 자체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IT기업의 소송에서 전자증거 수집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려왔던 법조계와 IT업체 간 충돌도 빈번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HP·제록스·EMC·IBM 등 IT기업이 소송 과정에서 필요한 e메일·문서 등 이른바 전자증거를 수집·복구하기 위해 소형 전문업체를 사들이거나 아예 자체 팀을 꾸리면서 변호사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업체가 도입한 전자증거 시스템은 추후 발생할 소송에 대비해 직원들의 e메일이나 전자 문서를 자동으로 분류·저장하고 소송 발생 시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필요한 내용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무엇보다 IT업체들은 이 같은 자동화 시스템이 전자증거 수집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준다고 주장한다.

 HP의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100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검색하는 데 18만달러가 드는 데 비해 자동화 소프트웨어는 2만5000달러에 이를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 법조계는 지난해 퀄컴과 브로드컴 분쟁 등에서 자동 시스템으로 수집한 증거가 부족해 재판에서 패소한 사례 등을 들면서 “값싼 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결국 추가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며 IT업체 설득에 부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대형 로펌인 펜위크&웨스트의 로버트 브라운스톤은 “IT기업들은 증거 수집의 질을 담보해야 한다”며 “변호사들의 실질적인 조언과 자동화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FTI컨설팅의 전자동 시스템을 도입한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의 존 프란츠 부사장은 “전자증거 분석은 자동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세”라며 “변호사들에게 이것을 맡긴다면 지나치게 비싼 비용만 발생할 뿐”이라고 맞섰다.

 한편 미국의 전자증거 수집 관련 시장은 지난 2006년 미국 연방법원이 단시일 내에 많은 양의 전자 정보를 확보해야만 하는 관련법을 만들면서 급성장해왔다.

  김유경기자 yu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