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통신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

[리더스포럼]통신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

 세계화에 관한 문제를 다룬 책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는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는 ‘황금구속복(golden strait jacket)’이라는 비유가 나온다. 저자 프리드먼은 세계의 절반은 세계화 체제에 성공하기 위해 개방과 무역으로 보다 나은 렉서스를 만드는 일에 힘쓰고, 나머지 절반-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은 누가 어떤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는지의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리브 나무 세상의 나라들이 렉서스 세상에 진입하려면 황금구속복을 입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황금구속복이란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범국가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피 등 해외단말기 도입에 관련된 이슈들을 지켜보면, 적어도 통신시장에서 우리가 황금구속복을 입고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싶은 의사와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위피를 비롯한 제반 규제 때문에 노키아나 애플의 최신 휴대폰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단순히 해외단말기 몇 종류의 도입 지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관련 산업 생태계가 노키아나 애플에 적용된 개방형 OS체제로의 전환이 늦어지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위피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 국내 콘텐츠 및 솔루션 산업계는 전형적인 올리브 나무 세계라 할 수 있다. 300만명 남짓하는 인터넷 주 사용가입자 시장에 수백개의 콘텐츠 업체가 의존하고 있어 지극히 영세하고 어려운 시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위피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해외에 수출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국내 독자 표준을 강조하는 바람에 CP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매우 저하돼 있는 상태다. 현재 글로벌 단말기 시장의 추세는 심비안, 리눅스, 윈도모바일과 같은 개방형 OS가 주도해 가고 있으며, 관련 콘텐츠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 우리나라만의 기준인 위피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개방형 OS가 적용된 해외 단말 도입을 허용해 국내 무선인터넷 환경을 개방형 OS의 글로벌 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300만명의 시장이 아니라 수십억명의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개방형 OS체제에 적응하면 충분히 기회가 올 수 있다. 특히 개방형 OS는 대부분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를 공개하기 때문에 기술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가치 있는 콘텐츠 개발이 가능하며,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세계인을 상대로 비즈니스할 수 있도록 생태계가 잘 형성돼 있다.

 위피 등 제반 규제를 완화하면 관련 업계뿐 아니라 단말기 가격인하와 소비자 선택권 증진 효과를 통해 소비자에게도 엄청난 이익이 돌아간다. 해외의 저렴하고 다양한 단말기가 국내에 도입되면 경쟁을 통해 가격인하와 품질 향상 효과가 발생하게 되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비슷한 기능의 국내 단말기와 해외 단말기 가격을 비교해보면 무엇이 소비자에게 이익인지는 자명해진다. 황금구속복을 입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처음에는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이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나면 종국에는 찬란히 빛나는 황금의 옷을 입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올리브 나무 세계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황금구속복을 입고 렉서스 세계로 갈 것인지 머뭇거릴 시간이 별로 없다.

  강우춘/한국노키아 대표이사 uchoon.kang@nok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