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정보통신, IT정책에 대한 무개념이 도를 넘었다. 정부 조직개편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하며 미련을 가졌던 사람들까지 이제는 ‘포기 상태’다. 만나는 기업인들마다 이구동성 목소리를 높인다. “도대체 이 정부의 IT정책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언론에서라도 좀 알려주세요.” 중소기업, 벤처인들은 한 옥타브 올라간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오직 대기업만을 위한 친화정책이지요. 우리(중기)는 안중에도 없어요. IMF 때보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비참할 뿐입니다.”
곰곰이 따져봤다. 현 정부의 IT 정보통신 철학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정책 지향점이나 컬러 역시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747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국가 경제비전이 나왔지만 여전히 ‘수정 중’이다. IT를 매개로 한 전 산업의 업그레이드를 외치며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다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답답한 마음에 정부 홈페이지를 뒤졌다. 방송통신위 사이트는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정책홍보 코너에 중점 추진과제가 실려 있다. 방통융합산업의 발전 가시화, 시장 친화적 규제개혁, 이용자 보호 및 소외계층 배려의 세 가지가 제시됐다. 원론적 그림에 불과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핵심사업’과 ‘정책과제’ 코너, 심지어 ‘위원회 설립목적과 임무’ 코너까지 ‘준비중 입니다’ 화면이다. 어렵사리 단서 하나를 찾았다. 최시중 위원장 인사말이었다. “방송통신을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라는 글귀가 보였다.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방통위 스스로 정체성조차 확립하지 못하고 있으니 기업과 시장의 냉소는 당연하다. 지경부 사이트 역시 비슷하다. 자원과 에너지 분야에 대한 현란한 정책과 비전에 비해 IT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하다 못해 클린턴 정부의 ‘전 국민의 인터넷 향유’라든지 노무현 정부의 ‘유비쿼터스 세상 실현’ 같은 캐치프레이즈조차 없다.
최 위원장의 표현대로 방통위는 규제기관인 동시에 정책기관이다. 정보통신 IT는 지경부 관할이라고 자르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방통위의 선택에 따라 정보통신 IT업계 전체가 움직인다. 생태계 꼭짓점에 통신사업자와 방송사, 인터넷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변이다. 방통위원들은 법대에 앉은 판사의 역할도 해야 하지만 중소, 벤처기업의 눈물과 땀을 닦아 주는 도우미 역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통신 대기업, 거대 방송사들만 상대하며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소외감을 주는 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인들의 호소는 접근성에 있다. 정부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지만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지경부는 왠지 껄끄럽고 방통위는 ‘하늘에 있는 기관’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IT부처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IT분야가 축소되고 에너지 문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지경부 실망론도 만만치 않다. 방폐장 하나 세우는 일로 온 나라가 들썩였는데 앞으로 원전 20여기를 더 짓겠다는 지경부다. IT에 돌아갈 역량이 그리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방통위원들은 지금이라도 중소 벤처기업을 열심히 찾아가라. 방송과 언론분야에 대한 탁월한 식견은 자산인만큼 이제부터는 정보통신 기업인을 만나고 연구원들 찾아가 진지하게 대화하고 토론하라. 연구에서 산업에 이르기까지 신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는 정책 방향성을 고민할 시점이다. 행사 사진을 찍고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서 정치적 시비를 붙느니 산업, 그중에서도 중소기업에 애정과 정책 포커스를 맞추라는 것이다. 대기업은 규제로 족하지만 중기 벤처, 연구원들은 지원과 육성에 목말라 있다. 그들에 다가는 것은 유착이 아니다. 중기 벤처는 우리나라 고용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방통위와 지경부는 좀 더 낮은 곳으로, 가까이 가라.
이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