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허리에 실 묶어 쓸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바늘 귀에 실을 꿰기 어렵다고 해서 대충 묶어서 쓰면 천에 걸려 실이 빠지기 때문에 바느질을 할 수 없게 되는 사실에 빗대어 아무리 바빠도 원칙과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은 속담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쓰려는 시도가 잦아 입맛이 씁쓸하다. 지난 2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하려다 노조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무산된 ‘콘텐츠 진흥기관 선진화 방안 공개 토론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의 2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발표된 지 불과 3일 뒤로 잡힌 이 토론회는 처음부터 생색내기라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특히 통폐합과 관련해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공개 토론회가 통폐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이해당사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준비 부족에서 나왔다. 급하게 서둘다 보니 토론의 방향을 이끌 발제문 작성이 늦어져 토론회 당일에서야 배포할 수 있었다. 토론자도 토론회를 이틀 앞둔 시점까지 선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노조 측 토론자로 초대됐던 게임산업진흥원 노조위원장은 “이처럼 아무런 준비도 못 하는 상황에서 토론자로 나서라는 것은 결국 들러리를 서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토론회를 연기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발제문조차 읽지 못한 채 연기를 선언해야 했다. 노조의 반발이 거세기도 했지만 그만큼 준비한 내용이 부실함을 문화부 스스로가 더욱 잘 알고 있었던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문화부가 노조와 협의해 토론회 일정을 다시 잡기로 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5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콘텐츠 산업 진흥에 매진해야 할 통합 콘텐츠진흥원에 대한 운영방안을 마련하는 일은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부족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문화부는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바늘귀에 실을 꿰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순기기자<생활산업부> soon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