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건설’이 성장동력인 나라

 “40·50대 남자들이 경제의 기득권과 주도권을 쥔 채 10대는 인질로 삼고 20대는 착취하는 나라. 미래가 보이지 않는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에서 좀 더 ‘악질적(?)으로 진보’한 ‘88만원(20대 월평균 임금) 세대’가 지난 한 달을 뜨겁게 달궜다. 현 경제체제 속에서 구조적으로 억압받고 소외받는다던 20대들이 베이징에서 보란 듯 일을 냈다. 그뿐이었다. 한순간의 감동이었다. 강고한 지배계층 40·50대 남자들이 한 일이라고는 돌아온 영웅들을 정치적으로, 혹은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 것뿐이다.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40·50대 국가 운용세력은 ‘삽질’이 고작이다. 젊은이들의 속을 후련케 했다는 이 선동적이고 갈등 지향적인 ‘88만원 세대’라는 책의 내용과 저자의 시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바리케이드 치고 짱돌을 드는 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공교롭게도 세 가지 혼란스러운 뉴스가 동시에 전해졌다. 일자리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 첫째다. “재개발, 재건축 활성화로 일자리를 늘리라”는 국무회의 지시사항이다. 곧바로 국토해양부는 “경인운하 추진하고 한반도 대운하 역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는 여당 대표와 재계 지도자들의 회동 내용이다. “어렵게 사면해 줬으면 투자를 늘려야 할 것 아니냐”는 압박성 하소연과 “각종 규제의 추가 완화가 필요하다”는 재계의 반론이 맞섰다. 세 번째는 충격적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IT 수출이 올해 들어 지속적인 하향 곡선을 그린 끝에 마침내 8월에는 증가율 0.02%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11개월내 최저치다.

 ‘88만원 세대’의 눈으로 들여다보자. 한숨만 나온다.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에 절망하는 20대에게 ‘삽질 경제’가 해답인가. 70년대 공공 취로사업도 아닌데, 부동산, 건설, 토목이라는 ‘삽질의 프레임’으로 우리 경제가 반석 위에 올라설까.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나라의 틀을 갖추겠다는 정부의 신성장동력이 땅 파고, 아파트 새로 짓는 것인가. 당장의 경기 회복에는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이건 아니다. 국가 역량의 포커스가 건설과 부동산에 맞춰진 사이 IT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반도체, 휴대폰 등 효자폼목이 고전 중인 상황에서 새로운 엔진을 돌리기 위한 정부 차원의 획기적이고도 대담한 실행계획은 ‘부재 중’이다. 와이브로·IPTV·4G 이통·로봇·나노 등 신수종산업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기술 외교력을 총동원해 측면 지원해야 할 국제표준과 특허 문제는 아예 논외 지역에 머물러 있다. 이 와중에 보여준 여당과 재계의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88만원 세대에게는 재벌 총수 사면이 흥정과 거래를 위한 카드였음을 재확인시켜준 꼴이다. 국가 기득권 세력의 천박한 인식과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 셈이다.

 88만원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보장되는 일자리일 것이다. 저임금과 비정규직 사슬에서 허덕이는 그들에게 삽 들고 공사장 가라고 외쳐 봐야 헛일이다. 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중소기업 인력 채용에 지원을 쏟아 붓고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름길 아닐까. 중기 우대하고 창업쪽으로 흐름을 바꾸면 일자리가 줄어드나. ‘삽질 경제’에서 벗어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다면 기득권 세력에 돌팔매질하는 ‘88만원 세대’가 30·40대까지 확산된다. 곧 재앙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