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또다시 무산됐다. 언론노조는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난 상황에서 공청회를 여는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개회를 원천 봉쇄했다. 이날 공청회 사회자로 나선 유의선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개회 선언도 하지 못한 채 1시간 이상 언론노조 설득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유 교수는 “제발 한 번 의견을 들어봅시다, 자기 말만 옳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수십번 했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공정한 사회를 보겠다고 여러 차례 말하기도 했다.
지난 8월 14일 무산됐던 1차 공청회 시 패널선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던 언론노조는 이번에는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난 마당에 공청회를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게 요지였다. 요식적 행위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행사장 이곳저곳에서 무차별적으로 터져나왔다.
“(시행령 개정안은) 정부가 이미 결정을 했는데, 우리가 내는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겠습니까.” “세금 축내는 공청회를 하지 말라.” 공청회 개최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묻히고 말았다. 결국 방송법 시행령 공청회는 이번에도 열리지 못했다.
유의선 교수는 마지막 발언에서 “상당한 비애를 느꼈다. 개인적인 모욕감까지 느낀다. 인신모독까지 당하면서 공청회를 진행하기 힘들다. 언론노조에도 유감이다”는 말을 남기고 행사장을 떠났다. 지방에서 이날 공청회를 보러 상경한 적잖은 방송계 관계자들 역시 허무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우리나라 미디어 지형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따라서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은 훼손돼서는 안 될 가치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날 공청회는 방송의 공공성과 민주주의 가치가 거꾸로 서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김원석기자<정보미디어부>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