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지도 교수님이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지도 교수님은 물리학 이론의 검증에 쓰이는 기본적인 수단은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점점 그 말씀이 자주 생각나는 것은 내가 물리학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바로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SW)의 대표적인 특성은 바로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SW와 관련된 문제점은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십수년 동안 하드웨어의 틈바구니에 묻혀 보이지 않는 SW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요즘 들어 SW가 점점 우리 주변 사람의 생각에서조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2006년도 IT 산업 분야의 수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체 약 1100억달러 수출 중에 SW 관련 분야의 수출이 13억4000만달러다. 전체 IT 수출의 약 1.2%를 SW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정말 쥐꼬리만큼밖에 안 된다. 또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국내의 SW 산업체 이름을 얼른 열거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어찌 보면 사람들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IT 산업뿐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서 원가를 계산하면 SW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훨씬 넘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수출하는 제품들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SW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또 제품들의 비기능적인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서 컨트롤타워 또는 두뇌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설비 역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SW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지원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가 처한 SW 산업의 환경을 살펴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이들 상품을 세계 시장에 팔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사실 SW 역량은 별반 없으면서 지금까지 이 많은 수출품을 잘 팔아 왔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느껴진다. 혹자는 ‘SW에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 지금까지 잘 해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SW를 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사람이 동요하고, 후배들에게 ‘너는 젊었을 때 빨리 다른 분야로 진출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컴퓨터 또는 SW 분야를 전공하려는 학생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또 들어가기 힘든 대기업에 입사한 젊은 SW 개발자의 이직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우리 SW 산업 환경이 점차 열악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 측면에서도 SW의 중요성 인식과 현황을 보면 우리 SW 산업 환경이 개선될지 의문스럽다. 한 예로 최근 10대 우수기술을 선정해 상을 주는 제도가 있다는데, 여기서 SW 기술 자체가 아예 빠져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입만 열면 부르짖는 융합산업에는 SW가 핵심요소라는 점이다.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의 기능의 80%가 SW에 의해 제공된다고 한다. 또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등인 기업은 ‘우리는 더이상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SW 역량을 기반으로 해 서비스 회사가 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하루빨리 SW 산업 환경을 개선하고 우수한 SW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지식서비스 산업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 눈을 감고 한 번쯤 생각해 보자. 과연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지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다.
배두환 KAIST 전산학과 교수 bae@salmosa.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