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달러 할인된 1899.97달러.’ 미국 대표 가전매장인 시카고 외곽 베스트바이에서 확인한 LG전자 HDTV(47인치 1080해상도) 풀패키지(TV+멀티플레이어+홈시어터 세트업) 가격이다. 24쪽 분량 전단 맨 뒤쪽 전체를 장식한 내용이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첫 느낌은 자부심이다. 우리 기업 제품이 전단의 대표면 가운데 하나를 가득히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매장을 돌면서, ‘우리 기업들이 정말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사인 소니와 파나소닉도 각각 1080해상도 52인치와 46인치 패키지를 1000달러와 850달러의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현지 직원도 “언제나 이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며 가격할인 메리트를 강조했다.
경기침체 여파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이곳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현지 교포는 “사람이 줄지는 않았지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썰렁한 계산대를 보라고 말했다.
지겹지만 ‘위기’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매장을 돌다 보면 TV·냉장고·세탁기 각 진열대 앞쪽에 삼성·LG전자 등 우리 기업 제품이 두세 개 건너로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눈부신 발전이다.
흔히들 우리 기업의 이 같은 성장을 한 편의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외국제품을 모방해 저가로 승부하던 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뚝 섰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즌2’를 준비해야 한다. 시즌1이 후발에서 선발로 올라서는 시나리오였다면, 시즌2는 확고히 1등으로 자리 매김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물론 시즌1보다 힘들 수 있다. 비유가 적절치 않겠지만 시즌2는 주로 시즌1의 후광을 크게 받는다. 희망과 꿈을 갖자는 얘기다. 드라마처럼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준비만 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시즌2 개막은 내년 또는 내후년이다. 글로벌 경기가 ‘확’ 풀리는 바로 그때다.
시카고(미국)=김준배기자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