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리콘밸리 `투자 위축` 우려감 고조

지난 2년간 미국의 경기 침체가 지속된 가운데서도 첨단기술 산업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만은 예외적으로 경기를 유지해 가며 잘 견뎌내 왔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붕괴와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 사태를 맞은 지금은 더이상 특유의 저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2일 미 일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에 따르면 미 금융위기로 인해 실리콘밸리를 지탱하고 있는 첨단기술 창업자나 벤처투자가 등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실리콘밸리 경제 분석가인 폴 새포는 "월스트리트 금융 위기가 표면화된 지난 1주일간 미국은 정말 대단한 위기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고 말했다.

새포는 "금융 위기 상황이 규제 정책이나 개인적인 투자 양태 등 모든 걸 변화시킬 것으로 생각한다"며 "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론 모험을 피하고 장기적으론 기본에 충실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포의 분석은 금융 위기가 `모험 자본`으로 살아가는 창업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리콘밸리 경제에 치명타를 안길 것이라는 예상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실리콘밸리가 IT의 상징에서 청정 에너지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노력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금융 위기는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청정 에너지 분야가 어떤 첨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보다도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적어도 수년 이상의 지속적인 투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품 설계를 마치고 견본 제품을 이미 만든 청정 에너지 분야 창업회사들에게 자금난이 닥치면 사업 성장은 어렵게 된다.

일부 바이오연료 업체들은 공장 증설에 상당한 현금이 필요한데 벤처투자사들은 과거와 달리 투자 과정에 `두번 세번` 재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 첨단 기술 장비를 도입하는 데 들이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체의 씀씀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실리콘밸리 경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된 메릴린치나 파산보호 신청을 한 리먼브라더스는 물론이고 모건스탠리 조차도 신용 위기에서 비롯된 재정적 문제를 안고 있다.

미 `포레스터 리서치` 조사결과 미국에서 기술 부문의 비용 증가율이 올해 9.4%에서 내년 6.1%로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위기 상황에 대해 유명 컴퓨터 관련 회사들 중 시스코는 장기적 성장 목표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고 델 컴퓨터는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금융 위기와 관련한 코멘트를 거부했고 오라클이나 썬마이크로시스템스도 언급을 자제하는 등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일반 소비자들을 주로 상대하는 애플이나 휴렛패커드(HP) 등은 신용 위기가 확산되면서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멀티미티어 오락물, 데스크탑 컴퓨터, 휴대전화 등에 대한 비용 지출이 줄어들게 되면 디지털 생활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온 이들 업체들의 꿈은 수년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전자.컴퓨터 전문 대형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는 지난 2.4분기 순익이 19% 가량 줄어들어 당초 예상보다도 훨씬 더 악화된 실적을 내자 이미 비용 감축에 들어갔다.

금융 위기 등의 압박이 커지는 시점에서도 실리콘밸리 첨단기술 업체들이 그나마 다른 곳보다는 잘 해나가고 있다는 보는 시각도 있다.

실리콘밸리 한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위기 사태를 보면서 실리콘밸리가 오히려 분별력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