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국가의 문화창달과 국민의 여론형성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공익성·공공성을 우선적 가치로 발전해 왔다. 방송통신융합이라는 세계적 대변화의 추세 속에서도 산업화라는 의미가 아직도 방송 분야에서 적잖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대세는 방송의 산업화를 촉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에 통신업계는 국민의 편익증진을 위해 값싸고 질 높은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나름대로 이 분야에 상당한 훈련과 적응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통신계는 약 50조원의 산업규모를 이루고 있다. 방송계의 10조원도 채 못 되는 산업규모와 비교해보면 두 분야의 산업화 진화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이 상대적으로 산업화로의 발걸음이 더딘 방송계와 산업화를 근간으로 발전해온 통신계 간의 상호 원활한 진입과 균형발전을 촉진해 나가려는 것이 최근 전 세계의 방송통신 융합기구에 부여된 주된 새 책무라 하겠다.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연초 방송통신업계는 물론이고 유관분야 많은 당사자의 ‘기대 반 우려 반’ 속에서 탄생했다. 그동안 조직구성과 인사 등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어오면서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기회에 몇 가지 발전 지향적 고언을 하고 싶다. 첫째, 최근 방송통신융합 관련 법안은 공익성보다 미래 비전과 로드맵 제시에 치중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듯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방송적 측면에서 볼 때, 공익성과 산업성의 조화보다 산업성에 경도되면 불필요한 잡음과 오해는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의 저변이 산업성을 중시하는 통신계의 맥락과 상당 부분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만약 ‘방송은 들러리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면, 이에 마땅한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둘째, 과거 역대 정부들이 뉴미디어 도입 때마다 일자리 창출과 산업동력에 대해 과대포장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대화와 논의가 꼭 필요하다. 방송계가 산업성 면에서 비록 통신계보다 못하더라도 방송의 성장가능 동력도 만만치 않다. 통신의 방송 진입뿐만 아니라 방송의 통신산업 진입문제도 균형감 있게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밖에서 보기에 통합기구나 통신계·방송계 모두가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겉도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있음에 유의했으면 한다. 셋째, 방송통신의 산업성과 공익성을 조화시키면서 일자리 창출과 산업성장 동력을 발흥시키기 위한 ‘산·학·관’의 공식기구 발족을 제안하고 싶다. 대통령령으로 구성하는 법정공식기구도 좋고, 방송통신위원장 직할의 정책자문기구도 좋다. 기존의 관념이나 집단이기주의적 관할영역을 뛰어넘는 범국가적 차원의 기구라면 어떤 형태라도 무방하다. 여기에서는 이를테면 콘텐츠 산업진흥 문제 등 미래 국민적 먹거리 산업의 발굴육성과제 등을 중점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콘텐츠 진흥이 가능하다는 증좌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잠재능력도 있고 시장도 있다. 어떻게 구슬을 꿰는지 그 해법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들을 체계 있게 다뤄 나갈 논의의 집합체인 공식기구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당대 석학이나 전문가를 망라한 기구를 구성,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유세준 /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rsj@kc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