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에너지 IT 한-러 정상회담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두 나라 간 정상회담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처음으로 이념을 넘어 실질적인 협력시대를 열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주 등 일부 과학 분야에서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는 우리는 특히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어 자원 부국 러시아와의 돈독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실정이다.

 사실 국내총생산(GDP)으로만 보면 러시아는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겨우 3000억달러 정도 많은 1조300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치다. 하지만 광대한 땅에서 기인하는 천연자원은 가히 세계적이다. 2006년 기준 러시아 석유 매장량은 총 795억배럴로 세계 7위며 생산량은 세계 2위다. 천연가스는 매장량으로만 보면 세계 1위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전과 광물이 개발된 것보다 더 많기 때문에 어떻게 자원 외교를 펼치는지에 따라 우리 국익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정부도 이번 대통령 순방에 에너지 전담부처인 지경부 장관을 비롯해 한국가스공사·한국전력 같은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 SK·LG·GS칼텍스 에너지 관련 기업 경영자를 대거 동행했을 것이다. 우주 등 과학과 IT 분야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두 나라 간 협력을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

 지난 4월 우리나라에서 처음 탄생한 우주인은 러시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내년에 발사할 우주로켓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연방우주청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우주·전자부품 분야 조인트 벤처 설립 등에 협력하기로 한 것도 양국 간 우주 분야 협력을 잘 보여준다. 이런 협력 관계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 해외 수출이 절실한 우리 IT산업과 자원외교를 좀 더 연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은 기대가 된다.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옛 소련 지역은 우리의 IT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자원외교와 연계하면 우리가 부족한 자원도 확보하고 IT 수출 돌파구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사례도 있다. 지난 5월 한승수 국무총리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자원 외교차 순방했을 때 카자흐스탄의 가스·원유 광구 확보와 함께 당시 동행했던 SK C&C가 카자흐스탄의 우정 IT 관련 서비스 및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모스크바 주 4개 지역에 30개 이상의 우리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한국기업 전용공단이 4개 생겨난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광신호 전송기술인 WDM-PON의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러시아 국영통신연구소가 양해각서도 교환한다고 한다. 에너지·우주·IT 등 두 나라 간 협력 확대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협력으로만 끝내서는 곤란하다. 더욱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긴 시선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과학·IT 모두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한만큼 정부는 당장 임기 내에 무엇을 이룬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전략을 가지고 러시아와 협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