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7천억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구제금융 관련법안이 29일 하원에서 예상을 깨고 부결돼 미국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원의 법안처리 실패 여파로 이날 미 증시는 지난 2001년 9.11 사태 때의 684포인트 하락보다 더 많은 777.68포인트나 빠져 미 증시 사상 최대 폭락을 기록하는 등 금융시장이 패닉(공황상태)에 빠졌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긴급경제대책회의를 열고 후속대책 마련에 착수했으나 퇴임을 4개월도 안 남겨두고 중요법안 처리에 실패, 대(對)의회관계에서 `식물 대통령`임을 드러내 앞으로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이 가속화되는 등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여당임에도 상당수 의원이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은 물론 다수당인 민주당 지도부도 소속 의원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금융구제안 처리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양당 지도부는 지도력의 `한계`를 보여 의회정치 공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버락 오바마,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도 선거일을 5주 앞두고 하원에서 법안처리에 실패함으로써 금융위기해결 대책 마련이 늦어져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선거에 이기더라도 차기 정부 국정운영에 적잖은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 하원은 전날 양당 지도부와 행정부가 금융구제안에 합의함에 따라 이날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을 상정, 표결을 실시했으나 찬성 205표, 반대 228표로 과반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공화당에선 의원 65명만이 찬성표를 던졌고 3분의 2인 133명이 반대했으며, 민주당에선 140명이 찬성표를 던지고 95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돼 공화당 의원들의 압도적 반대가 법안 부결의 결정적 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 의원은 "국민이 이번 구제금융 법안을 반대했으며 의회도 마찬가지로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인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은 "공화당이 이 법안을 무산시켰다"고 책임을 돌렸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부결이 확정된 뒤 "우리에게 여전히 위기는 남아있다"면서 "오늘 일어난 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원은 구제금융관련법안을 처리할 때까지 오는 11월4일 선거에 대비하기 위한 휴회를 않기로 결정하고 일단 내달 2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수정안을 상정,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미 의회의 구제금융관련법안 처리는 빨라야 금주 후반에야 이뤄질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법안이 부결된 뒤 긴급경제대책회의를 소집, 관계자들과 향후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표결 결과에 실망했다. 우리는 지금 큰 문제에 봉착해 있어 대규모 구제계획을 내놓았던 것"이라며 구제금융관련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 의회를 계속 압박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것임을 다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조만간 이번 부결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추가 방안을 마련, 의회 지도자들과 다시 협의에 나설 예정이지만 임기 말의 대통령으로서 중요법안에 대한 의회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 정치력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향후 국정운영에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구제금융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되자 민주.공화 대통령 후보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한 채 경제.사회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끄기`에 나섰다. 두 후보는 조속한 대안 마련을 촉구하면서도 법안이 부결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정치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하원에서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됐지만 아직 구제금융법안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면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에 대해 침착성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구제금융법안이 여전히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매케인 후보는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은 우리 지도자들이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하면 모든 노동자와 중소상공인 및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의원들은 즉각 이 위기에 대처하도록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매케인은 그러면서 "애초에 오바마는 개입하기를 원치 않았고 이후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면서 "옆줄에서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지도력이 아니다"라고 오바마를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