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의 계열 연구소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는 작년부터 주요국의 IT분야 성장을 분석하기 위해 ‘IT산업경쟁지수’를 발표해 왔다. 이 지수는 전체적 비즈니스 환경, IT 인프라, 인적자원, 법적 제도, 연구개발(R&D) 환경, IT산업 정부지원 부문을 평가하는 것으로 한국은 평가 첫해인 2007년에는 3위를 했으나 최근 발표된 올해 지수에는 8위로 5계단 하락했다.
한국의 지수하락에는 R&D 분야에서 작년 대비 IT특허 관련 지수조정이 큰 원인이지만 이 역시 전체 IT산업 경쟁지수를 더 세밀하게 산출하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순위 하락은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국내 IT산업과 국제무대에서 한국 IT의 위상추락을 반영하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조선·자동차의 맥을 이어 최근 10년 동안 IT산업은 우리나라의 대표 성장동력으로서 GDP의 15%를 차지했고 국가브랜드 제고에도 크게 일조했지만 최근 이 위상을 위협받고 있다는 징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4년 동안 IT수출 증가율은 30%에서 10%로 줄어들었고 IT벤처기업은 20% 넘게 사라졌다. 세계 최첨단 IT의 테스트베드이자 신규 IT서비스 상업화의 최선두에 있던 한국의 IT강국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방송통신 융합에 새로운 기대를 건다.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는 서비스와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콘텐츠·서비스·네트워크·단말기 등 기존 IT 가치사슬의 선순환 발전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국가산업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IT 역량 토대 위에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전략이다. 최근 방송통신 융합의 주무부처인 방통위가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발표와 함께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간 것은 21조원의 생산유발효과 29만개 일자리 창출 가능성에 대한 일각의 회의적 관점을 감안하더라도 큰 의미가 있다.
성장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주도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IT분야를 비롯한 방송통신 분야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세계 유수 경쟁국가와 비교하면 우리 정부가 그동안 IT분야에 그리 많은 지원을 해온 것도 아니다. EIU의 IT산업경쟁지수 2008년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적자원 부문에서는 미국, 싱가포르, 영국, 아일랜드에 이어 5위를 했지만 정부지원 부문에서는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강대국이 가진 브랜드와 역사적 헤게모니, 개도국에 있는 싼 노동력과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하나뿐인 분단국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멍에를 지고도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가질 수 있는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가진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자. 세계 경제위기가 고조되고 투자가 위축되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신성장 동력에 투자해 미래경쟁력을 선점할 절호의 찬스다. 위기는 그래서 곧 기회다. 김선배/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장 sbkim@kii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