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KISA가 방통진흥원이 된다니

 오는 10일 3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발표되면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 계획이 일단락된다. 공기관 개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지만 늘 용두사미였는데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 밀어붙이기 정부다. 일단 결정하면 어지간한 반론에는 끄떡도 않는다. IT관련 기관들도 사정 없이 통폐합한다. 방만한 경영으로 지탄받았거나 업무 중복으로 혼선을 초래했다면 당연하다.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개편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경우에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면 반대론자들을 개혁 저항세력으로 낙인 찍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려할 만한 사례가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관에 대한 처리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과 인터넷진흥원 및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을 통폐합해 가칭 방송통신진흥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부처별 IT산하기관 일원화가 원칙인 모양이다.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가깝고, 한 해 수천억원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신들도 부러워하는 직장’과는 거리가 멀어도 개혁 칼날은 피해갈 수 없다.

 공기관 개편은 시대정신과 정권의 철학을 드러내는 일이다. IT의 속성과 트렌드에 부합한다는 당위성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치밀하고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개편 후 달라진 모습의 예측도 가능해야 한다. KISA가 대표적이다. 담당 업무는 정보보호분야다. 국가기관은 국가정보원이, 민간 부문은 KISA가 맡는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기업의 보안시스템 점검에서부터 스팸방지, 사이버 공격 방어, 관련 연구까지 수행한다. 규모는 초라하다. 임직원 159명이다. 예산은 300억∼350억원. 그나마 개인정보유출이 사회문제화됐던 최근 2∼3년간 증액을 거듭한 것이다. 업무 특성상 석·박사급 고급인력이 즐비하지만 격무와 박봉에 시달린다. 정보보안 사건 발생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디지털 인프라가 진화하는 것과 정확히 비례한다. 오죽하면 과거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들이 나서 예산 및 인력 확충을 정부에 주문했다.

 정보화사회 최대 역기능은 정보유출이다. 국민의 물리적 안녕을 지키는 것이 군대라면 정보보안은 정신적 안온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간단한 해킹 툴로 금융에서부터 일반기업의 모든 것을 마비시킬 수 있고 4000만명의 개인 PC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본다. 방화벽 없는 개인PC는 인터넷 연결 4초 만에 악성코드에 감염된다. 최첨단 전자여권이 발급 한 달 만에 개인정보유출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루에 1억건 이상의 사이버 공격이 시도되고 청와대 수석에, 국정원 고위층 신상기록까지 떠다니는 세상이다. 사생활 침해 정도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혼란과 맞닥뜨리는 분야가 정보보호 기관과 전문기업들이다. 그 한복판에 선 KISA가 방통진흥과 하나로 엮이는 것은 우스운 그림이다. 설혹 기능과 역할의 내적 확대를 기약하더라도 정체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역할론도 거론되지만 국정원은 항상 ‘인권침해’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민간 부문까지 넘어오기에는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정부와 기업의 인식 수준이 일치하는 분야가 정보보안이다. 수백, 수천억원짜리 시스템 도입에는 열을 올리는 정부와 기업들도 정작 ‘보안 부문’은 과잉 투자로 여긴다. 덕분에 전문 기관과 기업들은 소외받는 찬밥이다. 정보통신시장에서의 보안 분야 비중은 세계 평균 1.6%에도 한참 뒤지는 0.3%에 불과하다는 통계(2006년 기준)도 보도됐다. 최대 기업 안철수연구소의 매출은 미국 시만텍의 1%에도 못 미친다. ‘IT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지만 현실이고 누구도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 대형 사건 터지면 그때마다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정보보호 역량을 키우지는 못할 망정 위축시키는 정책은 시대와의 불화가 아닌 역주행이다.

 이택 논설실장 et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