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돈脈경화`

실리콘밸리 `돈脈경화`

 “실리콘밸리가 사하라 사막처럼 건조해졌다.”

첨단 신기술과 서비스로 무장한 벤처의 산실, ‘실리콘밸리’가 맞고 있는 분위기에 대한 단적인 설명이다. 미국발 글로벌 신용위기와 경기침체의 여파로 숱한 벤처신화를 뒷받침했던 벤처캐피털(VC)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벤처투자 자금회수를 위한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건수가 지난 1999∼2000년 닷컴 붕괴 이후 사상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면서 재투자를 위한 선순환 구조의 동맥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울한 3분기 벤처 성적표

다우존스벤처소스에 따르면, IPO나 M&A를 통한 VC의 자금회수는 지난 3분기에 46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사상 최악의 IPO 환경으로 평가됐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톰슨로이터와 전미벤처캐피털협회(NVCA)의 리포트에서는 3분기에 단 1건의 IPO와 58건의 M&A거래 만이 확인됐다. 3분기중 일어난 가장 큰 M&A거래는 SBA커뮤니케이션즈가 매사추세츠 소재 무선인프라 업체 옵타사이트를 4억3000만 달러를 들여 인수한 것이었다.

다우존스벤처소스의 제시카 캐닝 글로벌리서치 디렉터는 “VC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M&A 단계에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1년으로 늘어난 대신, 평균 투자유치액은 56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벤처투자의 양극화

미국내 벤처투자가 경색되고 있는 상황에도 그린테크 등 분야에 대한 투자는 늘어나고 있다. 새너제이 머큐리뉴스에 따르면 3분기에 태양광 등 그린테크를 겨냥한 벤처투자는 26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실리콘밸리 소재 청정에너지 기업에 4억1900만 달러가 투자됐다.

에너지 리서치 전문기관 ‘클린테크 그룹’ 멤버인 마이클 고건은 “전례없는 신용 시장의 혼란 속에서도 그린테크에 대한 벤처투자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양상도 조속한 시일 내에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역시 투자 축소 또는 이탈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투자 선순환 고리 붕괴 우려

최근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용위기는 실리콘밸리 내 VC 투자유치 기업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비록 일부 VC들이 장기 펀딩계약을 진행하긴 했지만, IPO·M&A 시장의 붕괴로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는 VC들이 선뜻 재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무게를 얻고 있다. 이는 곧 새로운 기업이나 기존기업을 위한 추가 투자가 이뤄질 수 없음을 뜻한다.

물론 이 같은 우려가 아직은 ‘기우(杞憂)’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에밀리 멘델 NVCA 대변인은 “벤처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고 차입으로 성사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따라서 은행위기가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체 미국경제와 마찬가지로 벤처산업도 자금회수 파이프라인이 막혀 고통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벤처투자를 위한 시간과 돈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환기자, vict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