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의 일이다. 당시 체신부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5대 국가기간전산망(행정망·금융망·교육연구망·국방망·공안전산보안망) 구축 계획을 보고했다. “본 전산망을 구축하면 통치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직 부패문제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흔쾌히 결재했다.
다시 1993년의 일이다. 체신부 장관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그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해 필수적인 전산과 통신망에 대해 보고했다. “국가기간전산망이 이미 완성됐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신망과 컴퓨터 능력이 충분히 육성됐으므로 금융실명제만 입법화하면 정부, 기업, 개인의 모든 부패를 막아 투명하고 깨끗한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김 대통령은 흔쾌히 결재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상업용 인터넷망이 구성, 발전돼 현재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국내 정보뿐 아니라 전 세계 정보를 거의 무료로, 또 거의 무한히 접할 수 있게 됐다. 올해 6월 기준 우리나라 만 6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 수는 3536만명으로 인터넷 이용률이 77.1%나 된다. 전산망을 누가, 언제, 어디서나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하드웨어 용량과 속도가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용량과 속도가 테라급, 피코급이 돼야 하는데 이미 이 수준에 도달해 있다. 둘째 소프트웨어, 즉 제도적 뒷받침이다. 우리나라는 역대 대통령의 용단으로 아직 선진국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전산망, 실명제 등 각종 제도가 투명하게 돼 있어 국가·기업·개인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입법화된 상태다. 이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정보 강국이자, 개인에게는 세계 최고의 정보 향유국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보 유통 기반을 만든 전두환 대통령과 그 아우, 노태우 대통령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이 모두 구속되는 희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002년 반드시 이긴다던 이회창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노사모 인터넷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최근에는 국회의원 당선자 중 많은 사람이 비리로 당선 무효가 되고 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 사태가 연출되고 있다. 과거 20여년간 추진해온 정보화 진전으로 경제·사회가 그만큼 투명하게 돼 마치 큰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과 같은 혼잡과 혼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40위라고 발표된 바 있다. 과연, 과거 500여년간 유교 윤리로 다져온 우리 민족이 그렇게 부패한 나라인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어느 나라도 금융실명제가 완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에서부터 개인의 정보까지 거의 완전히 공개돼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같은 잣대 위에 놓을 수 있는 것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로 지난 10여년을 지내온 우리는 정보 투명성으로 보면 세계 최고의 정보 민주강국이다. 또 정보 공개로 인한 혼란을 잘 견딘 내성도 지니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일은 보호해야 할 정보와 공개해야 할 정보를 법적으로, 또 관례적으로 잘 확립해 전 세계의 정보강국 모델이 되는 것이다.
박영일 코레스텔 대표이사 ceo@correstel.com